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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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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BY 수련 2005-10-25

남편과 결혼한 지 벌써 28년이 되었다. 백화점에서 날아온 메일이 맨 먼저 축하를 해준다.

고객 하나는 정말 잘 챙겨준다. 해마다 표내기도 뭣하여 그냥 미적거리고 있는데

딩동~ "꽃 배달이요"

아들놈이 꽃바구니와 케잌을 보내왔다.

어찌 알았을까. 자식을 못 키우지는 않았네. 괜스레 마음이 흡족해진다.


쌀쌀해진 날씨 탓이기도 하지만 일요일이라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남편은 아침 먹고 다시 이불 밑에서 텔레비젼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다.

"웬 꽃바구니여? 당신 생일인가?"

"생일은 무슨.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고 당신 아들이 보냈네요"


생판 남남끼리 만나 28년을 한 이불속에, 한 솥밥을 먹으면서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다투었는데... 이제는 서로의 눈짓, 몸짓만 보아도 뭘 원하는지

감을 잡지만 그래도 가끔씩 싸울 때는 아직도 낯선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 잣대로만 남편의 단점을 들어 속상해하고 미워하고 했는데 반대로 남편입장에서는 나는

완벽한 여자였을까. 평소에는 말을 안 하다가 취중진담이라고 술 먹고 나에 대한 불만을

끝없이 늘어놓는걸 보면 나도 남편에게 부족한점이 꽤 많은 마누라였던가 보다.


내 스스로 아이들 잘 키우고 남편에게 내조를 잘했다고 혼자서 흡족해 하고, 

상대편인 남편에게는 아내로서 만족을 주지 못했다면 아내자격미달로

점수를 주지 못할 것이다.


연말에 부부모임에 나가 둘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부가

오누이처럼 닮았다고들 하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닮은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데 남편도, 나도 의아해 했다.


오랜 세월동안 같은 공간 안에서 부대끼다보면 어느새 식성, 습관이나 행동들이 닮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들의 얼굴에서 아빠, 엄마의 모습이

뒤섞여 나타나니 온 식구가 닮은꼴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28년을 돌아보면 그 세월이 까마득한데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앞으로 금혼식을 맞을 22년 후를 무탈하게

또 맞이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더 짧은 생이지만

서로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고

동반자로서 남은 생을 후회 없는 삶으로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