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을 쓸 때 대부분의 글이 시어머님과의 사연들이었다.
그것이 내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었기에 머리로 억지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에서 느끼는 것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언제 그렇게 쌓여 있었는지 그동안 알지 못하고 있었던 응어리들까지 글로 배설되었다.
배설은 참으로 시원했다. 장 속의 찌꺼기들이 비워지듯 가슴 속 응어리도 그렇게 비워지고 있었다.
그러자 조금씩 절제가 되었다. 나의 글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그런 변화를 축하해 주었다. 내 글에서 `시' 자가 사라진 것에 대한 축하였다.
그러나 좀 더 넓어진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은 더 어려워졌다.
예전처럼 뭔가가 터져 나오는 그런 글이 좀처럼 써지지가 않았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써 내려가던 글은 도중에 계속 멈추어졌고 그런 때는 가슴 속 글이 아닌 머리 속 글로 꾸역꾸역 면을 채워야 했다.
그러다 아이로 인해 힘든 시기를 맞게 되었다.
한동안은 글이란 것조차 우습게 보이고 세상 어떤 것도 내겐 의미를 갖지 못했다.
답답했고 슬펐다. 나는 작게작게 하나의 점으로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울림이 느껴졌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들려왔다. 그것은 내게 끄적거릴 힘을 주었고 나는 다시 글을 만나게 되었다.
글은 절로 쓰여졌다. 머리가 개입할 틈도 없이 속살거리는 가슴의 말을 옮기기만 하면 글이 되었다.
글은 나를 견디게 했다. 나를 일으켜주었다. 친구가 되어 내 손을 잡아주었고 함께 울어주었다.
한동안 나는 할 이야기가 아이에 관한 것 밖에는 없는 그런 시간들을 가져야 했다.
사실 한가지 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글이 오래 되는 것은 그다지 마땅치 않은 일이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언젠가부터 아이를 벗어난 글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다시 여유를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머리로 쓰는 글들을 만나게 되었다.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은 작은 사물에 대해서도 철학적인 사고를 하며 자신의 신변에 대한 자잘한 글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들을 쓰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럴 만큼 성숙되지를 못한 것이 분명하다.
나의 일을 한 발짝 물러서서 냉정하게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이 자꾸 막히고 머리로 짜내려 하게 된다.
다른 이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글이 이어지지만 내 글은 힘이 들어가서 부담스러워진다.
읽히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서 생각하자면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없는 글 쓰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아직 나는 쓰는 즐거움을 우선해야 할 것 같다.
흔히 좋은 글은 진실을 담은 글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을 자꾸 염두에 두고 글을 쓰면 왠지 글이 멀게 느껴진다.
내가 가장 즐겁게 쓴 글들도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내 가슴 속 이야기들을 할 때였다.
내게 있어서의 진실을 담은 글.
그러나 그것을 진짜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똑 같은 일을 경험하더라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누구의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진실을 왜곡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도 늘 진실된 글을 쓰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진실을 토해낸다.
요즘은 다시 며느리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 들을 자꾸 토해내고 싶어한다.
힘드니까 글로 쏟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참 조심스러운 것이 있다.
나는 내 입장에서 글을 써야만 시원해질 것이므로 이제 자꾸 그런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그것이 참 진실인지는 자신이 없다.
사실은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내 생각이 짧아 스스로 잘못을 모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이 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없이 내 입장으로만 쓴 글을 올려도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쓴 글이 과연 진실인지...
그렇다고 한 발짝 물러 선 글은 사실 내 맘의 글이 아닌데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는지...
그러나 그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글을 쓸 것이다.
사람이 먹기만 하고 살 순 없듯이 나도 글로써 아픔을 배설해야만 살 것 같기에...
그래서 감히 이해를 구하려 하는 것이다.
비록 내가 쓰는 글이 참 진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해 받고 싶다고...
어차피 내가 아는 만큼만 글도 쓸 수 있기에 때로는 잘못된 진실을 쓸 위험도 충분히 있음을 미리 양해 받고 싶은 것이다.
쏟아낼 만큼 쏟아내면 나도 그만큼 깎이면서 조금씩 성숙되겠지.
그런 성숙의 세월을 거치면 언젠가는 나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글을 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는 그런 날들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