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됐지?
정색을 하고 헤아려보니 손가락 서너개가 아닌 양손가락을 사용해 헤아려야 가능한 햇수가 되어 있었다.
그때 내 큰동서 위암으로 세상 떠나면서 공부 잘했던 큰 딸아이는 걱정이 없는데 아들녀석이 걸려 눈을 못감을 것 같다며 눈물 지을때 제 아빠 있는데 어찌 그리 아픈말을 하느냐며 가시는 분을 탓했었다.
그렇게 형님은 가 버렸고 시숙은 새사람을 만나 곧장 결혼했는데 내동갑으로 처녀결혼해 온 새형님은 시숙의 다이어트를 시작으로 차를 사고 성당에 기백만원의 감사헌금을 바치면서 부잣집 마나님으로 자리를 매김하며 작은 성가심인 딸꾹질처럼 나를 경원시까지 했다.
"서울에 사는 내 친구들은 서방님 보다 못한 직장을 다니는데도 자네보다 훨씬 잘 사는 것 같던데.." 라며.
그러던 그들이 작년에 가진것 깡그리 탕진하고 우리몫의 땅까지 가져갔으면 됐지 형님이 떠나면서 걱정했던 아들이 대학 졸업하니 내게 전화해서 우리집에서 데리고 있으란다.
가슴이 '철커덕' 쇳소리를 내며 떨어져 운전을 못하고 갓길에 세웠다.
그리고 대답했었다.
"아주버님. 그건 못하겠습니다"
"데리고 있으시요"
"아니요. 전 못하겠습니다"
"데리고 있어주시요!"
"죄송합니다. 그건 못하겠습니다"
전화가 툭! 끊기고 갓길에 서 있던 난 와들와들 계속 떨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줄이 곤두서버려 느슨한것에 익숙했던 내 몸이 그것을 감당치 못해서일 것이다.
시숙과는 상관없이 아이걱정에 편히 눈감지 못했던 형님이 마음에 걸려 졸업하고 여지껏 일정액을 통장에 넣어주고 있었다.
군대까지 다녀온 아이 몇푼 주는 돈에 자존심 다쳐서라도 열심히 살지않을까 하는 마음과는 정말 다르게 돈이 떨어지면 내게 전화해 차비가 없다고 말한다.
답답하다. 언제까지 저럴까 생각하니.
그렇게 제 부모는 상관치 않고 숙부,숙모인 우리는 애를 끓고 있는데 내 시부님 손주걱정에 이틀이 멀다하고 내게 녀석을 물어오신다.
또 돈이 없다고 전화가 와서 모른척 했습니다. 했더니 아버님은 제 아빠에게 전화하셔서 그렇다드라 말씀을 하셨나보다.
전화가 울렸다.
받는순간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시숙이 말한다.
"돈이 필요하다 하면 그걸 주면 되지, 그걸 주면 되지! 왜 아버지한테 그런말을 하는거요. 왜! "
그리고는 또 전화를 툭 끊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