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후배의 아기 돌초대를 받았다.
그가 못가게 되어 나 혼자라도 다녀오라는 어명이다.
토요일 오후
때마침 백화점세일기간과 맞물려 10분내외로 운전해 도착하니.
지하에 차 세운다고 15분을 소비하였다.
후배라 하더라도 신랑과 2살 차이니,
울아들은 중학생 1년생이다.
1월에 결혼을 하고 11월달에 아이를 가진 나는 아이가 늦은 편은 아니다.
후배의 동서는 나랑 나이가 같다.
결혼을 비슷한 시기에 했는데,
그 동서의 친정이 좀 빵빵하게 잘 사는 모양이었다.
롯데호텔 뷔페였다.
난 아이들 돌을 치를때 나혼자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여
나 혼자 다 했는데,
옆집에 아는 사람 아줌마가 도와 주어서
준비를 혼자서 다 했는데.
주마등처럼 그 시절이 지나갔다.
사람사는게 거기서 거기인지라,
여름 피서을 가서도 마주하게 되고,
아무리 잘 산다고 하여도
그게 그리 부러워 보이진 않았는데,
그 동서의 친정부모님을 뵙고는 그 동서가 부러웠다.
아이를 못 가져서 10년을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다고 하는데,
친정엄마랑
자식이 무언지, 어려운 과정마다 친정부모님이 계셔서,
챙겨주셨으니,
그것이 지금에야 보이는 것이다.
그 삼촌도 아이의 돌 날
인사말로
"사랑하는 집사람과 장모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하였다.
포스코에 다니는 그 삼촌은
처가가 잘 살아서 고개에 힘깨나 들이고 살았는데,
얼마전 위암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이 되어 수술로 가능했으나,
암수술을 받은 몸인지라 보기가 안스럽다.
그런 과정을 겪어서인지,
그 부부는 이제야 사람에게 진솔하게 대한다.
그 전에는 그러질 못했다.
내가 보기엔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넘치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견디기 힘든 시련일 때도
옆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가족이 있었고
그 긴 10여년을 우리는 꿈도 꾸질 못할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던 걸로 안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멋쟁이들로 넘쳤지만,
돌아오는 길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단순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내 운명에 별다른 불만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나만 바라보는 신랑이 건강하게 버티고 있고,
내가 살아갈 정도의 풍족함을 늘 주고,
뭐라해도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싶다.
크게 부자로 살진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부자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