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는 옷을 좋아하신다.
좋아하다 보니 자연 나름의 감각을 세워 멋스럽게 입고 다니신다.
물론 젊으셨을 때 우리가 어릴 땐 알뜰살뜰 사시느라 변변한 옷이 제대로
없어 외갓집이라도 갈 때는 옷 때문에 고민을 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출복 한벌 정도는 사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입어도 되었을 것을
옷이 없다며 푸념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곤 막상 사 온 옷을 보면 집에 있는
것과 별 차이도 없어 뵈는 내눈엔 그저 그런 홈 웨어 쪼가리들 같았다.
비싼 건 못 사고 지갑 사정에 맞추자니 하지만 초라해 뵈지 않고 나름 세련을 부려
보자니 그리 되었을 게다.
엄마는 옷 욕심이 많으시다.
엄마는 약간 쌈직한(그러나 결코 싸지 않은) 그러면서 약간 분위기가 독특한 일테면
보세옷을 좋아하신다. 한벌 값으로 여러벌을 사서 코디해 입는 걸 좋아한다.
그러자니 집은 옷으로 넘쳐 난다.
그 덕인지 할머니 소리를 들어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을 것같은 요즘에도
분위기는 오십대 초반의 아줌마로 보인다.
어떤 때는 옥색으로 또 어떤 때는 노오란색으로 아래 위를 맞춘다.
어느 때는 서부의 목장아줌마 같이 또 어느 때는 사모님 같이 맞춘다.
옆에서 지켜보던 난 이옷 저옷 사모아 시행착오를 많이 겪지 말고 차라리
똑부러진 메이커 옷을 한벌 사서 오래 싫증내지 말고 입으라는 얘기도 예전에 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취향이었고(사실 나두 그러진 못한다. 난 싼 옷 한벌을 주구 장창
입게 되었다.) 엄마는 다다익선 많이 사서 재두고 요것조것 입어보고 싫증나면
얘 주고 쟤 주고 그러셨다.
재활용 옷수거함은 주로 편한 내가 되었다.
엄마가 아무리 젊은 취향이라도 엄마와 나는 체격조건도 약간은 다르고 20년 세대차이라 는 것도 있는데 입던 옷을 굳이 딸에게 준다는 것은 좀 그랬다.
난 별로 옷을 사지 않는데 엄마가 옷을 주겠다는데 그래도 고맙게 생각하고 일단 가지고
와서 막상 입어 보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 맘에도 안들어서 날 준 것이겠지만.
엄마가 약간 크게 산 옷을 더 날씬한 딸에게 주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엄마가 날 위해 사준 옷도 많았었는데 헌옷이라고 안 입기는 그래서 입다가 아무리 봐도
나완 어울리지 않아 엄마가 내게 준 거라고 여겨지는 옷은 최근에 거의 버리다시피 하였다.
내가 아기를 낳고 몸이 많이 불어있을때(지금도 차이는 별반 없지만)
심지어 팬티까지 준적도 있었다. 생각 없이 받아 입었는데 나중엔 기분이 나빠져서 다 버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느낀 것은 헌 옷을 남에게 주는 것은 조심스러운 것이란 거였다.
왠만하면 주지 말아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엄마에게서 헌옷을 더이상 얻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취향이라는 것이 엄연히 다르고 체격도 아직은 내가 날씬해서 금방 입지 못할 것이 뻔하기때문이다.
지난 추석에도 분홍색 티와 칠부바지를 입은 날 보시더니
옷장을 뒤적거리더니 분홍색 블라우스를 꺼내 주신다.
색깔이 맘에 들었지만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거절하여도 섭섭해 하신다.
"흥, 이제 옷은 주지 말고 먹을 거나 줘야겠네."
엄마! 좀 입을만한 걸 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