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6년전 혼인신고만을 하고 살면서 첫아이를 임신 했습니다. 8개월의 몸으로 동서 형님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추석당일이면 언제나 큰집으로 제사를 모시러 가지요.
무거운 몸으로 힘들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큰집엘 갔습니다. 배는 남산만 해서 여간 힘든게 아니였지만 어른들이 계시는 터라 며느리 입장에서 아이 가졌다고 앉아서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열심히 제수를 갖다 나르고 할일은 크게 없어도 제사를 모시는 동안 줄곧 서 있었어요.
지루한 제사가 끝이 나고 그때 부터 나도 주최할 수 없는 잠이 쏟아 지기 시작 했습니다. 참아 볼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도무지 감당이 안되더군요.
누꺼풀은 사정없이 내려 앉고 다리의 힘은 사정없이 풀어지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그 많은 방들중에 제일 구석진 방을 몰래 찾아 10분만 누워 있어야지 하며 몰래 숨어서 누웠어요. 남편도 몰래 말이죠.
그런데 그때 부터가 큰 일이었습니다. 모두들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음식을 치운다고 분주 하였고 그 뒤엔 밥을 먹어야 하니 밥상을 차린다 분주해서 더군다나 말이 없는 저를 그 자리에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는가 봅니다.
한참을 잤는가 봐요. 그런데 밖이 너무 조용한 거예요. 큰 일이 났다 싶었죠. 어떻게 얼굴을 들고 밖에를 나가나 정마루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모든 방들이 비어 있었고 현관문까지 잠겨 있더군요.
내 사랑하는 신랑마저 나를 잊어 버린채 추석이면 의례 가는 성묘를 가고 만것입니다.
다행히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은 모면 했지만 남편만 믿고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은 난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땐 남편도 남들보다 늦게 공익근무요원이었기에 휴대폰도 아무것도 없었으니 더욱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키 157에 몸무게 58(임신중)로 밥을 먹지 않았더니 배가 무진장 고파오더군요. 걱정은 뒤로 미뤄 두고 부엌에 들어 갔습니다. 밥은 먹기가 곤란해서 보이는 포도, 밤,귤등의 과일을 먹었어요. 심심하더군요. 텔레비젼을 보았습니다.
따르릉 걸려 오는 전화소리. 받아야 할지 아님....그래서 가만히 들고 먼저 말을 하지 않으려 하니 들려 오는 반가운 목소리가 있더군요.
"희야..야 임마 너 맞지. 거기서 뭐하노. 난 당연히 네가 형수랑 같이 있을 줄 알고 어른들 모시고 산소에 오니 니가 없잖아. 형수도 모른다고 하고. 어이구 이 바보야. 뭐했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잘 먹고 잘 놀다가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어리괄이 나오더군요.
"넘 잠이 와서 골방에 들어가 잠깐 누웠는데 정신 없이 자버리고 말았다. 석아 언제 와. 난 돈도 아무것도 없는데."
"좀만 기다려라 다행히 산소랑 가까워 다행이지. 한 30분이면 모두 도착한다. 형수는 먼저 갔다, 형님이랑."
그땐 남편이 조그만 티코를 가지고 있었어요.
기다리고 있으니 남편이 오더군요. 큰집 식구들도 오시더군요. 민망하고 부끄러웠지만 큰집 식구들이 작고 어린나이에 만삭으로 도려 고생했다고 허허 웃어 주시는거예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면 되지 하며 오히려 저의 실수를 덮어 주었습니다.
23살 나이에 격은 추석날 에피소드 지금도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