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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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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왕만두 송편을 아십니까?=


BY 푸른솔미 2005-09-30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현상을 갖고 계실지는 모르지만,정말 명절 때만 되면 머리카락이 한 웅큼씩 빠져서 원형탈모증이 생긴답니다. 왜냐구요?

 

'명절증후군"이라나 뭐라나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시집 온지 얼마지나지 않은 추석이었어요. 남편이 해외로 출장갔었는데, 기대도 없던차에 뜻밖에 추석 하루전날 연락없이 집으로 돌아왔지 뭐예요.

 

앞으로도 6개월정도나 더 남았는데....그 순간 정말 하나님을 만난것 같은 뜻밖에 상봉이어서 너무나 기뻤어요. 사실은 일손 하나가 귀한 마당에 일좀 시켜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더 했죠.

1년 6개월씩이나 떨어져 있어서 혼자서 정말 힘들었는데, 남편을 보니 울컥 눈물이 쏟 아지더라구요.전 경상도 토박이 종가집 며느리 거든요.사실 시아주버님이 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어요.그래서 늘상 혼자 해야만 하거든요.근데 마누라가 이렇게 등이 휘게 죽어나
가는줄도 모르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하는일 없는 괴씸한 시아주버님 과 남편은 전이 짜네 송편이 싱겁다...식혜가 아니고 왜 수정과냐 ..며 수고한 보람없이 투덜대곤 하지 뭡니까?
이럴 때는 정말 뚜껑 열리고 스팀[steam] 팍팍 납니다.


속으론"서울에만 올라가봐라!내 가만히 안둔다!'하고 다짐을 한답니다. 우리시댁은 시골 종가집이라 그런지 왜그리도 추석이나 명절때만 되면 손님들이 많은지 상을 차렸다가 치웠다가 하기를 7-8번을 하고나면 하루종일 부엌에서 허리 한번 곧게 필 시간이 없답니다. 이럴때는 정말 남편과 결혼을 내가 왜 했는지 원망스러울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궁리끝에 벼르고 벼른 나머지 명절 일주일 전부터 앓아 누어 난 일 못한다며 엄살을부렸읍니다.아프다며 이불덮고 알아누워 버렸어요. 어지어찌 우여곡절끝에 남자들이 송편과 전을 맏았지요.

호호호~``~얼씨구나!


그 발 같은 손으로 남편이 직접 송편도 빚고, 모양은 이게 송편인지 만두인지 분간 할수 가 없었지만 사실 정말 그 송편 맛있었거든요.

송편은 두 말을 빗고 전은 두개의 큰 채반을 했는데, 이런 걸신이 들었는지 한개에 왕만두만한 송편을 글쎄 두남자가 뚝딱 해치우데요.거기 까지는 좋았읍니다. 그런데 전을 부치는데.이건 전인지 행주를 삶아놓은건지 너덜너덜,잘 뒤집지를 못해서 찢어지기가 일쑤이
고, 또 그놈에 것이 빨리익기나 하나요? 좀 진드건히 기다리면서 뒤집어야 할텐데 성격들이 급해서 익기도 전에 뒤집어버리니 전의 모양이 제대로 나올리가 있겠습니까?

한 반나절을 두남자가 교대로 "아이구" "아이구" 하며, 저녁까지 부치더라구요.그리고는 두 남자 그날밤 동시에 몸살났다는것 아닙니까! 이제야 그들도 내맘을 알았을 겁니다. 그것도 뼈절이게 말이죠.


그리고는 몸살기운에 입맛이 똑 떨어졌는지 그 좋아하던 갈비가 짜도 김치가 시어터져도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지 뭡니까.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얼마나 우습던지..ㅋㅋㅋㅋ

강호동 저리가라 할 만한 황소만한 체구에 전좀 부쳤다고 앓아 눕는꼴을 보니 우습기도하고 고소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내가 명절후에 왜 자기에게 짜증내는지 분명히 알게 돼었다며, 남편은 내게 영양제까지 사다주지 뭐예요.정말 웃기고 힘들었지만, 이번 명절은 소득이 아주 많았던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차 사고가 난 광경을 보게 되었읍니다. 어찌나 그 모습이 처참하던지 들것에 실려나가는 한 할머니를 보게 되었읍니다. 피투성이의 그 할머니는 아마 돌아가신듯 보이더군요.


순간,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할머니가 계시던 때는 사이가 그렇게도 안좋던 큰집에도 자주 찾아뵙곤 했었는데 할머니가 없는 지금은 한가위와 같은 명절이 찾아와도 그리 정겹거나 훈훈한 마음의 고향을 느낄수가 없음은 무슨이유일까
요.... 그렇게도 날 이뻐해 주시던 할머니,할머니가 너무나 보고싶어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꺼라고 다짐하게 되더군요,제가 지금 이렇게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저희 할머니도 종가집 며느리셨읍니다.

 

팔순이 다 되어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일년에 7번이나 되는 제사와 집안 대소사를 모두 깔끔하게 치뤄내시며 힘든내색 한번하지 않으신 그런 조용한 분이셨읍니다. 하지만 그 엄격함 속에서도 가족사랑에는 아낌이 없이 모든것을 희생하신 분이셨읍니다. 할머니가 계실 때는 못난 손녀딸이 할머니속을 유난히도 많이 썩혀드렸는데 지금에서야 뒤늦은 후회가 되네요.모두 부질없는 짓이지만요.자식들은 이렇게 어리석어서 자식인가 봅니다. 부디 좋은곳으로 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힘든 며느리 !아내 !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