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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야생화,얼음 같은 계곡-덕유산 구천동


BY jeongann 2005-08-01

안녕하세요?
여름휴가는 어디로 떠날 작정이세요?
노컷뉴스 독자들을 위해서 제가 사는 고장,
전북 무주 덕유산에 지난주말에 다녀온 기행문을 올립니다.
제가 꼭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멋진 휴가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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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끝자락,
대서와 중복 지나고 이제 일주일후면 가을의 문턱에 들어 선다는 입추이지만
가마솥 더위는 식을 줄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마치 한증막에 들어서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다.

성하의 계절 여름,
푸른 산과 맑은 계곡, 그리고 시원한 바다가 모두 그립다.
바다에 가면 산이 보고 싶고 산에 가면 바다가 생각나는 여름, 
뙤약볕을 받으며 장쾌한 능선길을  걸으며 발을 옮길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땀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 여름산행의  묘미일 것이다.
뙤약볕 내리쬐는 능선을 걸으며 더위를 이기고 싶었다.

방송국에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과 함께 도시탈출을 마음 먹었다.
무더위를 훌훌 털어내고 여름을 앞서 보내는 여행으로 제격인 곳,
그래서 찾은 곳이 덕유산이었다.
덕유라는 이름은 덕이 있고 크며 넉넉한 산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산세를 지닌 덕유산은 숲과 야생화,
얼음 같은 계곡 등 여름 산행의 멋을 고루 간직하고 있어
등산객을 유혹하는 곳이다.

무학대사가 골치아픈 세상에서 벗어나 경치 아름다운 산을 물색하다가
발견했다는 산이 바로 덕유산이다.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4개군에 걸쳐있는 덕유산은
한라산과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남한에서 네번째로 높은 산이다.
산세가 험해 등산객들도 힘들어하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산으로 변했다.
무주리조트에서 운행하는 관광 곤도라 덕분이다.
덕유산과 무주리조트는 드라마 여름향기의 주촬영지였다.
일본의 케이블TV를 통해 방영되면서 겨울연가에 이어
대박을 날리고 있다고 한다.
남이섬, 용평리조트에 이어 새로운 한류관광지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무주로 가는 길목마다 '낙후의 한 벗어 버리고 한류관광지 무주'
'태권도공원과 기업도시 선정 무주..' 무주는 그런 힘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쉬운 등산코스를 택하지 않았다.
힘이 들고 다리가 아파도 덕유산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무주 구천동에서 시작해 백련사를 지나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 오른 다음 다시 하산하는 것이다.
대략 에닐곱시간이 걸리는 산행을 선택했다.

왜 구천동이라고 했을까?
구씨와 천씨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구천동이라고 불리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하나는 기이한 바위가 9천개나 있다고 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예전에 절이 많이 있어서 수도승 9천명이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무주 구천동은 아무튼 엄청나게 긴 골짜기다.
이 길고 아기자기한 골짜기의 산행은 삼공리의 매표소부터가 시작이다.
백련사까지의 5.6㎞거리를 걷는 걷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월하탄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운 구천동 계곡에 눈길을 두어가며
쉬엄쉬엄 걷다 보니 그리 지겹지는 않았다.

산그늘 밑을 흐르는 차디찬 계곡물은 더위를 절로 물러나게 한다.
계곡 입구 건너편 도로변엔 가족단위의 야영객과 연인들이 쳐 놓은 텐트가
정겹게 다가 온다.
대학교 다닐 때 여름이면 찾았던 많은 계곡들..
이젠 그런 여유도 없이 살아가나 보다.
바위틈을 돌아나오는 물에 발을 담그고
친구들과 오순도순 물장난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머리 위에는 나무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싱그러운 나무향기와 흙냄새 가득한 숲속,그 사이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고요함을 시샘하는 나뭇잎 속삭이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들의 합창….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복잡한 세상사는
어느새 나를 떠나고 정화된 몸과 마음만 남아 있다.

 또,물 흐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매미소리도 귀에 따갑다.
녹음 사이로 비친 햇살은 물 위에 반짝이며 부서진다.
녹음이 우거진 숲은 세상살이로 찌든 마음을 마냥 푸르게 물들여 가고 있었다.
오른쪽 구천동 계곡은 그렇게 우리를 따라 오더니만
1시간30분이 지나서 백련사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숨어 살던 곳으로,
흰 연꽃이 솟아 절을 세웠다고 한다.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계단을 오르니 대웅전이다.
대웅전 왼쪽에는 맑은 샘물이 있었다. 물맛이 좋다.
잠시 다리를 쉰 뒤 향적봉을 향해 발길을 떼어 놓았다.

 그러나 백련사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순식간에 돌변한다.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 2.5㎞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오르막.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며 숨이 차오른다.
산이 워낙 가파른데다 날씨마저 너무 무더웠기 때문이다.
기온이 30도가 훨씬 넘는 무더운 날씨에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보니 너나할 것 없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무더운 날씨임을 증명하듯 후덥지근한 열기로 숨이 콱콱 막히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위로 짭조름한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른다.
땀 체질인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앞서가는 사람들의 옷이
엉덩이까지 홍건이 젖어있다.
너무 지친 사람은 조금이라도 판판한 곳만 있으면 벌렁 드러눕는 모습도 보였다.
체면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이를 악물고 천근만근 다리를 재촉했다.
중간중간 오이와 귤로 갈증을 달래며 정상을 향해 한계단 두계단을 올라갔다.

가파른 오름길에 녹초가 될 때쯤에
원추리 노란 꽃길을 따라 산릉을 걷고,
잠자리 군무의 환영을 받으며 하늘이 열렸다.
6월부터 피기 시작한 꽃들은 무더운 여름에 지친 듯
풀죽은 모습으로 늘어져 있었지만 연신 입에서는 탄성이 울려 퍼졌다.

소잔등처럼 부드러운 덕유산 능선이 눈높이에 맞춰 펼쳐진다.
한발 한발 디뎌 마침내 정상에 서자 펼쳐지는 파노라마.
급한 숨이 멎기도 전에 산행을 함께 하던 우리는 환희에 젖어 들었다.
맥주 광고 마지막 장면처럼 짜릿함이 몸 구석구석 퍼져든다.
백련사를 떠난지 두어시간이 지난 뒤에 얻는 기쁨이다

야생화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니
물봉선과 짚신나물, 흰바늘 엉겅퀴, 흰진범 등 야생화가 우리를 반긴다.
하기야 우리 국토 어디에 하찮은 것이 있으리.

향적봉 아래로는 구름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구름이 솜털처럼 날린다.
 여름꽃들이 화사한 산길을 따라 걷는 사이 다시 구름이 밀려들더니
따가운 여름 햇살을 가려준다.
그러다 다시 구름이 걷히면서 파란 산야가 드러난다.

향적봉 정상에 올라서자 그 너머로
무주 구천동 스키장 곤돌라 터미널이 보인다.
산밑에서는 구름이 밀려 올라오고 향적봉은 이를 없애느라
부지런히 팔을 휘젓는다.
향적봉 산정상에서 땀을 식혔다.
곤도라를 타고 올라온 휴가객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 댄다.

고개를 돌렸다.
남서쪽을 향해 끝없이 달리는 장쾌한 능선은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준다.
산아래로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고사목들이
열병식이라도 벌일 듯이 늘어서있는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운해 사이로 점점이 떠있는 봉우리가 정겹다.

5분 가량 내려오다가 대피소를 만난다.
이곳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적시고 샘물을 지나
다시 백련사 내려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20여분 내려 가다가 평탄한 길에 앉아 배낭을 풀어 제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김밥과 하지감자에 고구마, 옥수수, 오이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백련사로 발길을 재촉했다.
백련사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원래 상당한 난코스로 정평이 나있다.
오르막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리막길을 한번도 쉬지 않고
단한숨에 뛰어 내려 왔더니 다리에 맥이 풀리며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를 내려왔을까.
갑자기 세찬 물소리와 함께 독경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깊은 산 속에 살포시 자리잡은 백련사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덕유산국립공원관리소 매표소까지는 6㎞.
속세와 멀리 한다는 이속대를 거쳐 백련담, 안심대, 구월담, 비파담 등
구천동계곡을 거꾸로 훑어오다 보니 어느 새 인월담에 도착했다.
넓은 반석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비단처럼 아름답다는 곳이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은 뒤 산행길에 지친 발을 담궜다.
발끝에서 시작된 냉기가 머리끝까지 전해진다.

송어 양식장을 지나 휴게소에서는 휴가를 맞아
모처럼 나선 가족들과 연인들은
구천동 계곡 시원한 물에서 자란 송어회와 파전으로 얘기꽃을 피운다.
10여년전에 찾았던 구천동 계곡은 다시 멋진 추억을 만들어 놓고
또 다른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