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의 꿈을 머언 남의 나라 얘기로 일축 해 버리던 날, 내 가슴은 굵은 소금을 비벼 넣은 것처럼 아리고 쓰라렸다.
큰 맘 먹고 어렵게 띄엄띄엄 하소연하듯, 매어 달리듯 그렇게 도움을 청했지만 남편은 무 자르듯이 말 중간을 토막내고 말았다.
"이 사람아, 아무나 책 내는 줄 알아? …그거 굶어죽기 딱 이야…."
난 책 팔아서 배불리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부자 되고 싶은 맘으로 책 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자기 일 이외에는 고루하고도 단순한 사고를 가진 남편은 턱도 없는 얘기라고 냉정하게 썩둑 잘라 버렸다.
나는 피가 맺힐 만큼 입술을 앙 다물어야했다.
언제부터인가,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쓴 글이 여기저기에 선 보이면서 그에 걸 맞는 대우(?)를 받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 마음속엔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있었다.
한번쯤 내 이름 석자가 또렷이 박힌 수필집 한 권을 내고 싶은 간 큰 생각이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면서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화려하게 금장식 은장식 된 표지도, 유명한 화가의 삽화도 원하지 않는다.
비록 내 세울 것 없는 초라한 경력이지만 두어줄 남길 수만 있어도 부끄럽지 않다.
빳빳하고 도톰한 지질(紙質)이 아니어도 좋다.
거칠고 투박한 누런 갱지라도 내 글이 책으로 쓰여질 수만 있어도 족하다.
난 대단한 것도, 기발한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내 글을 읽고 한번쯤 내 삶 속에 들어와서 나와 조금이라도 닮아갈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누구든 능력 있고 재주 있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무나’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남편에게 난 ‘아무나’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여편네에 불과 했나보다.
하기야 가끔씩 컴퓨터에 코 박고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는 아내에게 어깨 너머로나마 관심의 눈길 한번 줘 본적이 없는 재밋살 적은 남편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첫 번째 등단소식이 알려지고 월간지 한 귀퉁이에 내 이름 석자가 부동의 자세로 박혀 있었지만 “제법이네!”라는 소리 외엔 그 흔한 칭찬 한번 해 주지 않은 무심한 남편이었다.
두 번째 등단소식엔 그나마 고개 틀고 날 한번 쳐다 봐 준 게 다였다.
출판사에서 시상식에 오라는 통지서를 보냈지만 난 가지 않았다.
첫 번째처럼 '택배' 운운은 하지 않았지만 왠지 내켜 하질 않는 것 같아서 - 시상식이 대전에서 오후 7시라는 게 맘에 안 들었나 부다 - 죽계백일장(한국 문협과 영주시에서 지원하고 영주문협에서 개최하는 전국단위의 백일장) 심사를 핑계를 대고 간접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에게 출판 운운했으니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내 짐작은 한치도 어긋남 없이 아귀가 맞은 셈이다.
우선은 적지 않은 -우리 살림에는- 인쇄비도 부담이었고, 막상 활자화되어서 밖으로 선 보였을 때 돌아올 반응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반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드러날지도 모를 결과에 미리 겁먹고 발을 빼는 모양새가 서운하고 또 실망스러웠다.
어떤 일이든 결과를 미리 점쳐놓고 시도를 할 수는 없다.
물론 나를 우려하고 나를 위해서 반대하고 있다는것 쯤은 이미 다 꿰고 있지만 예상 밖의 결과는 얼마든지 나올 수도 있는데 굳이 부정적으로 결론 내려서 포기하는 어리석음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물 흐르듯 유연하게 꾸려온 삶이 어느 정도 종착역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조급함은 아니더라도 불려온 세월의 무게를 글을 통해서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고 싶어졌다.
줄일 수 있고 덜어낼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꿈을 접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애초부터 내가 쓴 글을 가지고 돈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음달 초에 인터넷 신문이 창간 되는데 그곳에 내 아호가 들어간 폴드가 마련되어 있어서 내글이 고정적으로 실릴 것 같고, 가끔씩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을 하고 있지만 그게 돈이 되지않는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금전적인 욕심은 애초에 접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내 일상의 탈출구로서 손색이 없는 일이기에 그동안 모아놓은 글이 적지 않아서 책으로 내 보면 어떨까 하는 꿈을 가진 것이다.
말 그대로 꿈은 꿈으로서 끝내야 될 일을 섣불리 달려들어서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이 안 된 건 아니지만 부딪혀 보고 싶은 욕심은 날이 갈수록 부풀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