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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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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역을 지나 제천역에서...


BY 개망초꽃 2005-07-25

 

동화 역은 창작동화에 나오는 유화 그림 같았다.

얕은 바람과 함께 흔들리던 샛노란 금계국,

고개를 든 원추리 무리들의 주황색 아우성,

띄엄띄엄 혼자씩 앉아 있는 색색의 백일홍.

머리를 대고 어쩌니 저쩌니 떠들고 있던 느티나무의 초록색 입김.


우리 셋은 동화 역에 있던 그네들처럼 때론 샛노랗게 흔들리며 웃고,

때론 원추리마냥 소리치며 떠들고,

때론 백일홍이 되어 자신의 색깔에 맞는 몸짓을 했고,

때로는 느티나무처럼 편안함을 주었다.

밖이 초록나무과 주황빛 꽃들이 어울려 기차 안 입장에서 보면 청명하고 싱그러웠다.

그러나 밖은 더위에 지쳐 드러눕고 쓰러진다.


청량리 역에서 제천행 9시 기차를 예약해 놓고

패랭이님과 아리님은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로 오고 있었는데

지하철 사정으로 지하철은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택시를 잡아타고 난리를 쳤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떠나간 기차는 다시 오지 않는다 했다.

그걸 다 알면서도 대책이 없었다.

그래도 제천행 기차를 여자 셋은 안도의 숨을 쉬며 가볍게 올라탔다.


아리님은 땡땡이 무늬 내 가방을 보고 한번에 날 찾아냈다.

급한 마음에 패랭이님은 나를 마주보고 오면서 전화를 해대며

서로 보지 못했는데 처음본 아리님이 패랭이님을 먼저 발견했다.

아주 아주 아리님은 눈썰미며 영특하기가 말을 안 하려야 안할 수가 없다.

아주 아주 아리님은 말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기분좋게 하고,

웃음이 계속 터지고 또 터졌다.

배꼽 주변이 안터졌는지 다들 살펴보길 바람.ㅎㅎㅎ

처음보자마자 평상 시엔 검정이나 감색이나 회색 옷만 입는다고 옷의 식성을 말하면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서 주황색 바지를 입고 왔다고 하는데...

그 말이 얼마나 배꼽이 삐져나오게 웃음이 나오던지..

원추리 꽃과 한 쌍이었다.

간이역마다 체천 도로가에 원추리 꽃이 아리님 바지처럼 흐드러졌다.


패랭이님은 답글처럼 말솜씨도 수준급이다.

외모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강남에 사는 여자 같다고 누군가가 그랬다. 딱 맞는 표현이다.

아리님과 통하는 뭔가가 있는지.둘이서 얼마나 웃음보따리를 펼쳐 놓는지.

우린 참 많이 웃었다.

아리님아? 패랭이님아? 마음이 통, 통, 통...통했느냐?


제천역 개찰구에 두 여자가 보였다.

한눈에도 도영님인지 오월님인지 다 알겠다.


도영님은 코스모스처럼  쭉쭉빵빵 늘씬했다.

도로가에 여름 코스모스 꽃이 한창이었다.

우리들은 코스모스를 보면 “코스모스 꽃이 벌써 피고 난리네”했고,

원추리 꽃을 보면 “나리꽃 아니었어요? 그냥 나리꽃이라고 하지 뭐” 했고,

너무 흔해 식상해 보이는 개망초꽃을 보면

“망초님 길이다. 여기도 저기도 온통 개망초님이다.” 했다.

낯가림이 나와 비슷해서 그런지 특별한 대화는 없었지만

마음속은 글속에 등장하던 인물처럼 따스할 것이다.

나도 처음 만나면 표현도 잘 못하고 말 수가 적어서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살듯이...

도영님은 옛날부터 꼭 만나고 싶었던 분 중에 한분이기에

표현은 못했지만 정말 반갑고 반가웠다.

그래도 만나고 싶었어요? 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요, 요...요?


오월님은 자그마하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편안한 인상이었다.

분홍색 샤도우를 칠한 동그랗고 예쁜눈,

차분하고 순수한 말, 더운걸 참고 안내해 주던 땀이 묻어있던 뒷모습.

말하는 거나 배려하는 거나 참으로 선하고 착하고 다정했다.

미리 답사를 하고 운전 해 주고, 남편 분까지 전화를 해서 풍성한 대접을 해 주었다.

화분마다 우람하게 큰 봉숭아꽃과 맑은 물 도랑이 흐르고,

오월님의 부지런한 솜씨가 그대로 놓여있던 사업장에 들려 음료수 한병을 마시고,

청풍 쪽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거기엔 여름 꽃이 화려한 잔치였다.

진초록과 강한 여름 꽃색이 어우러져 작열하는 여름날씨와 궁합이 잘 맞았다.

오월님은 나를 위해 들꽃찻집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알고 지냈던, 내가 원하던 대로 해 놓은 찻집이 하나 있었다.

친해진 사람마다 몇 번이나 데리고 갔던 강원도 치악산 가는 길...

스레트 지붕과 넓은 마당과 찌그러진 창에 덕지덕지 바른 황토벽,

창가에 이끼낀 들꽃이 살고, 돌담이 소박하게 쌓여있던 그 곳.

그 곳이 오월님이 내게 보여주고 싶다했던,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들꽃이야기 찻집이었다.


들꽃이야기 찻집에서 글이야기,들꽃이야기,우리들 이야기를 하면서

찻집 옆에 흐르던 계곡으로 갔다.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니 달아 올랐던 열기가 식었다.

“모니터에 있던 사람들이 여기에 나타나 발을 담그고 있네요.

참....이런 일도 다 있군요. 눈물이 나와요. 신기해요.“

오월님은 몇 번이고 이런 말들을 했다.


여러번 손을 잡고,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잠시 작별을 했다.우리는...


우린 다시 이 자리, 네모난 모니터와 본체 돌아가는 소리와

커서가 껌뻑꿈뻑 껌뻑이는 이곳에서 만날 것이다.

가끔은 모니터에서 걸어 나와 기차를 탈 것이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끄고 계곡물 소리에 발을 담글 것이고,

커서의 명령에서 벗어나 나무그늘아래 계절 꽃과 함께 거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