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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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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 그 열망


BY 최지인 2005-07-08

퇴근을 하는데 경비실 아저씨가 손짓을 한다.

택배가 와 있으니 찾아가란다.

딸애가 또 인터넷으로 뭘 주문했으려니 속을 긁어대며 갔는데

전혀 예상을 빗나간 선물이 멀리서 달려와 있다.

 

강릉 친정 엄마의 정성스런 마음이 실린 매실 엑기스와

빨갛게 잘 우러난 앵두 술이 플라스틱 병에 조르르 담겨 있다.

미리 전화 하시면 또 미안함을 앵돌아진 지청구로 풀어낼 딸년이기에

전언없이 보낸 엄마의 마음에 순간 코끝이 시큰해진다.

 

냉장고 속이나 뒷베란다 선반 위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야 할 테지만

당분간은 부엌 창가에 올려두고 엄마를 대하듯 말을 걸고 싶어

창턱에 조르르 얹어두고 저녁 내내 마음이 달떴다.

 

매실 엑기스는 하룻밤만 재워서 본래 가야할 위치로 정리해야겠지만

앵두주는 예쁜 유리병에 옮겨 두고두고 세포를 물들여야지 싶다.

 

요즘 늘 허전했다.

무언가 꼭 집어 말할 순 없는 그 메울길 없는 공허감의 요체가 무엇이었나.

엄마의 마음을 전해 받고서야

난 늘 그리움에 열망처럼 매달렸었음을 실감한다.

 

그랬구나..

얼마전 내 일기장에 낙서처럼 써내렸던 이유가..

 

 

< 시장에 다녀와서  -6월 15일-  >

 

음력 5월5일 단오를 앞 뒤로
어김없이 찾아오는 붉은 빛 입술
그 붉은 미소에 마음은 흠뻑 젖고도 남아돌아
줄줄이 도열한 하얀 술병 속에서 빨갛게 풀어내던 열망.

이즘이면 신작로 위로 개구리 울음소리가 넘쳐나고
합세한 두꺼비들의 팔딱이는 뜀뛰기 시합도 숨이 찰거고
밤하늘 별들은 그 총총함이 유달리 정겨울 때.

일차 모내기를 끝내고 한숨 돌린 동네분들이
노인정 앞마당에 모여서 술내기 게이트볼 게임을 치를터이고
아낙들은 조촐한 음식 장만으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시기.

그 옆 죽 둘러쳐진 앵두나무 울타리 밑에선
고만고만한 손주 녀석들이 새까만 얼굴로 한손으론 앵두를 따 입에 넣고
한손으로 코를 슥~ 닦아 바지 춤에 비벼댈 즈음인데.

지금도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을까나
이젠 거의 방치되다시피 저혼자 호사롭게 달렸다
저혼자 땅으로 추락하는 열매의 빨간 흔적이 온통 벌겋게 뒤덮었을테지.

한 주먹 가득 빨간 앵두를 따서 하나하나 아껴서 입에 넣기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똑같이 개수를 세어서 아예 한주먹 가득 털어넣고
후___푸푸__씨앗 멀리 뱉기 내기를 하던 유년의 친구들.
그 친구들도 나처럼 그날을 돌아보고 있을까나

작년만 해도 시장에서 곧잘 보이던 앵두가
올해는 왠일인지 전혀 보이질 않아
조금씩이나마 맛보던 향수는 그만큼의 부피만 쌓아야 할 지경이다.

어젯밤 보았던 달무리가 대신의 위안일 수도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