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에서 세 번째로 이사 간 집은 시장 통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였다. 아담한 양옥집. 주인과 우리만 사는 단촐한 집. 일층주인집 마루를 지나 반질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방 두 칸이 나오는데, 한 칸은 주인집 큰아들 방이고, 작은 방은 우리가 살 방이었다. 방 옆에 바로 유리로 된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열면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주인집과 같이 쓰는데, 주인집은 허드레 물건만 갖다 놓고 빨래만 널기 때문에 그 공간은 우리 몫이었다. 난 그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방은 아주 좁았지만 공간은 방보다 넓고 그곳에서 보는 왕십리 길바닥은 어두침침도 지져분하지도 않았고, 골목도 햇볕이 잘 들어 눅진거리지 않아 뽀송했고 투명 창 하늘이 항상 그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근데 그곳에서 지냈던 사연은 짧고, 계절도 여름 한가지로만 남아있는데...
그 공간은 부엌이었다. 뚜껑 있는 고무통 위에 석유곤로를 올려놓고 장떡만 부쳐 먹었던 기억, 불그죽죽함으로만 남아있다. 그 때가 고등학교 일학년 따뜻한 초여름이었다. 하얀 블라우스 교복에 불그죽죽한 넥타이를 달고 다녔었는데. 고무통색과 석유곤로와 장떡과 넥타이색이 잘 어울렸다. 저녁이 오면 그 공간에 노을이 스며드는데, 동생 얼굴도 엄마 얼굴도 부엌살림과 어울리는 색이 되었다.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숙제도 하고 만화책도 보고 벌렁 누워서 내 맘대로 가질 수 있는 하늘을 욕심껏 끌어안았다.
그 공간은 잠시지만 닭장이었다. 동생이 사 들고 온 두 마리 병아리는 왕십리 시장에서 주워온 썪기 직전인 배추 잎을 먹고 잘 자라주었다. 금잔화 꽃송이 같은 노란 얼굴로 삐약삐이약 자분자분 거리더니, 나중엔 꼬끼오어~~ 냅다 소리를 질러대서 엄마는 주인집 눈치를 보아야했다. 기르던 걸 잡아 먹을 만큼 식성이 좋지를 못해서 왕십리에서 엄마와 같이 노점상을 하던 넷째 이모부가 오셔서 쌀자루에 구겨 놓고 쌀자루 주둥아리를 꽁꽁 묶어서 데리고 갔다. 쇠철망으로 엮은 비어낸 닭장을 보면서 그리 허전하지 않았다. 닭은 어릴 적부터 잡아 먹기 위해 키웠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여야 했다.
주인집 부부는 나이가 오십 정도쯤 되어 보였다. 주인아저씨는 처음 볼때부터 병색이 짙어 있었다. 얼굴은 사람이 아니고 해골이었고, 팔이나 다리는 과학교실에 있던 뼈다귀였다. 주인아줌마는 남편 병 수발을 하느라 지쳐서, 주인아저씨는 병에 지쳐서 인사를 해도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표정이 없었다. 병명은 늑막염이라고 했는데, 엄마는 폐결핵인데 속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식에게 옮겨질까봐 주인집에 가는 걸 꺼려했다.
주인집엔 아들이 셋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큰아들과 막내는 중학생이었다. 큰 아들은 나를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웃어주곤 했다. 난 그 오빠 그 표정이 왠지 좋았다. 그 오빠가 오는 시간이면 계단 난간에 서서 기다렸다. 어느 날 그 오빠는 묻지 않았으면 좋을 학교성적을 물어보았다. 옆에 계셨던 엄마가 나대신 공부를 못한다고 대답을 하시고, 그 오빠는 제가 봐줘볼까요 하더니 둘이서 결정을 해 버렸다. 일주일에 두 번씩 오빠한테 공부를 배우기로 했다고...싫었다. 닭은 싫었을 것이다. 쌀자루에 뒤집어 씌어 이모부한테 어쩔 수 없이 끌려 갔듯이 나도 꼼짝하지 못하고 그 오빠 방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끌려 가야했다. 그런다고 내 성적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난 더욱더 공부를 포기하게 되었고, 나중엔 그 오빠 앞에서 울고 말았다. 그래서 과외공부는 없던 걸로 해 버렸지만 사춘기 때의 자존심이 아이스크림처럼 뭉그러져 그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오빠한테 공부를 배웠던 때는 겨울이었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손이 시려 공부를 하면서 작은 소리로 손 시리다 그러면 그 오빠는 내 손을 문질러 주었고, 발 시리니 하면서 아랫목에 깔려 있던 담요를 다리에 덮어주었었다. 그런데 난 그 겨울을 잊고 싶었다. 울었던 그 날은, 몇 번을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오빠는 조금 큰소리로 그렇게 공부를 안 해서 뭘 하겠니 했다. 당연히 못하니까 그런 말을 한건데 난 눈물이 펑펑 나왔다. 하루 종일 그치지 않는 눈송이처럼 펑펑 울어댔다. 그리고 그 다음부턴 그 오빠네 방엘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다 녹아 나무막대기만 남은 자존심으로 어떻게 그 오빠를 볼 수가 있겠는가. 세 번째 집, 그 집의 기억은 여름밖에 없다. 겨울은 녹아 나무막대기로만 남았다.
주인집 아저씨는 누워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가끔씩 마루에 나와 앉아 있곤 했는데,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가 떠올려졌다. 휑뎅그렁한 파자마 바람으로 머리는 쥐가 몇 날이고 잔치를 벌려 파헤쳐져 있었고 볼은 장마에 파인 웅덩이었다. 난 섬뜩했다. 인사도 안하고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나 계단으로 올라왔다. 폐결핵을 앓던, 폐결핵을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엄마의 추측이 맞았다. 주인 아저씨를 본지 일년쯤 되던 여름날, 현관문을 여니 주인집 안방 방문 앞에 엄마가 앉아 있었다. 어? 오늘 장사 안나가셨나 하는데, 안방 주인아줌마 뒤로 아저씨가 누워있었다. 근데 더운 날 이불이 목까지 푹 덮어져 있고 얼굴색이 백지였다. 난 엄마한테 가까이 가려고 했더니 주인아줌마가 이층으로 올라가라는 손짓을 했다. 주인아줌마 눈엔 물이 금방 쏟아질 것 같이 출렁거렸다. 주인아저씨는 세상 고통에서 영영 이별을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한달쯤 뒤에 공간이 넓은 이 곳에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계획에도 없던 이사였다. 이유는 자기네는 불굔데 우린 기독교라 서로 상극이란다. 그래서 자기 남편이 죽었다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나가라고 했단다. 엄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살이라 그날 밤 밤새도록 뒤척이며 한숨을 쉬셨다. 가진 돈은 없고, 이사철은 아니고, 가난은 엄마를 지치게 했다. 그래도 난 빨리 떠나고 싶었다. 그 오빠도 터무니없이 뒤집어 씌우는 주인아줌마도 하루 빨리 안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