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부락 친구에게!
학교 뒷산의 밤꽃향기가 온 교정을 훑고 다니는 요즈음
이란다. 운동장 담장 사이로 빨간 넝쿨장미의 행렬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지금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단다.
이러한 날 맑은 구름속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너의 표정을 기억한다는 것이 참 기쁘구나.
친구야!
형식적인 인사일랑은 집어치우자. 지금 이 시간 넌 무얼하고 있을까? 아마 하얀 머릿수건을 가지런히 쓰고 앞치마를 입고 총채를 들고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언젠가 그랬지?
넌 총채 당번이라고...그 다음 너희반 화단에 물주기를 한다고...
난 네 그런 모습에서 섬소녀의 청순한 이미지를 느낀다.
이른 아침 파란잉크색으로 피어오르는 나팔꽃의 선명함과 파란 바다와 어우러진 네 모습을 떠올린단다.
조금은 세련된듯 청바지에 티샤쓰를 입은 서울의 여고생들에게서 규격화된 발랄함을 느낀다면 너희 선암부락의 여고생들에게서는 물미역의 상큼한 감촉을 느끼는듯 신선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결코 나만의 느낌은 아닐성 싶구나.
친구야!
이제 머지 않아 곤색제복을 벗고 각자의 개성과 능력에 따라 사회에 진출하겠지?
그때부터의 너와 난, 본격적이 넓은 바다에서의 항해가 시작될거야.
힘없는 사공처럼 선장겸 선원으로 조각배를 타고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바람에 의지해 나가는 사람보단,심한 풍랑과 해일에도 꺾이지 않는 수백명의 선원을 잘 이끌어가는 강한 선장이 되어 보자꾸나. 그 과정을 향한 지금의 이 시점에서 정녕 너와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은 노력이란 단어가 아닌가 싶구나.
넌 분명 힘있게 멋지게 탈수 있을꺼야. 겁 먹지말고 힘차게 갖은 풍랑 헤쳐나가기를 빌어본다.
푸르름이 이는 창공엔 갈매기가 날고 끝없는 수평선 위를 튼튼한 여객선을 타고 힘차게 나가거라.
친구야!
난 요즈음 갑자기 "좁은문"에 나오는 "알리사와 제롬므"의 사랑에 뭔지 모르게 우상화 되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단다.
그것은 질투라 표현해도 좋고 부러움이라 표현해도 좋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사랑을 할지언정 좀더 정신적인사랑,가령 알리사와 제롬므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거야..
지난 일요일 짝꿍에게 나의 이런 고백아닌 고백을 했더니 나이와 계절탓이라고 웃어 넘기더구나. 난 김빠진 맥주마냥 또 다시 우상화 하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단다. 우습지?
친구야!
네가 만약 '문경지교'와 같은 우정과 알리사와 제롬므와 같은 사랑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생각해봐.
너의 심정은 어떠하겠나...한번 현실에 직면했다고 생각하고서 말야
우정과 사랑, 어느것이 중요하다고 저울질 할 수는 없겠지? 두가지 모두 잃었어도 금방 새로이 만들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일도
아니고,또 쉽게 처리될 문제도 아니고...그러니까 고민과 번뇌는 만날줄 모르는 평행선 위에 봉착해 있는거지... 후후
친구야!
행운을 안겨 준다는 기형인 네잎 크로바를 찾는 모습과 저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행복을 찾아 산을 넘는 모습,이 모습에서 넌 무얼 느끼겠니? 난 결론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전혀 무시할 수 없을거 같아. 마냥 부푼 가슴을 안고 크로바를 찾는 그 순간과, 산을 넘는 순간 바로 그때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인간이 늘 동경하고 있는 행운과 행복의 순간일거라는 생각이 든단다.
친구야!
횡설수설을 한없이 지껄이는 내가 네 눈엔 바로 보이는지...끝까지 듣겠니?
울고 싶은 사람은 울어야 마음이 풀리듯,절대로 울지 않는 계집엔 이렇게 지껄여서 풀어버리려고 한다.
지난 시간,
맨 뒷자리에 앉아 엄습해 오는 졸음을 못이기고 40분이란 시간을 비몽사몽으로 보낸거 같다.후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지...
반가운 종소리는 내 귀를 의심치 않더구나. 그러나 그와 함께 뒷통수에 날아오는 강한 펀치, 어느새 뒷문으로 들어오신 담임선생님의
그 펀치의 위력은 잠을 싹 빼앗아 가더구나.
그러나 왜 조느냐는 물음에 눈이 아프다고 엉뚱한 대답을 한 나...
사실 졸리운 것을 참으니 눈까지 아프더구나...후후...
사람은 솔직담백해야 하는데 순간적인 나의 거짓은 또 한번 어느날 '별이 빛나는 밤'에 반성의 기회를 마련해 주리라...
친구야!
무언가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무리들을 나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이해도 하지만 한편으론 염증을 느끼고 있다.
어는것 한가지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위대한 위인은 못된다. 사람은 역시 명예욕과 출세라는 것을 무시 못하는 고차원적인 동물인가 보다.
허지만 우리도 그들 그룹에 속하면서 사회라는 것을 배워나가겠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르겠지만 너와 난 설령 뛰어난 그 무엇이 있다 해도 너무 자만심을 갖지 말자. 항상 겸손과 양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자신이 높아지자 하면 낮아질 것이요,자신이 낮아지자 하면 높아지리라는 말도 있으니까.
친구야!
계속하고 싶다. 무한히...허나 제재라는 것도 무시 못하겠지?
다음에 또 수다 나누자꾸나. 참, 한국의 히포크라테스가 된다는 네 친구의 그 꿈은 지금도 과감히 전개되고 있겠지? 지금 이 순간도
못난애의 말이지만 칠전팔기를 실천해 달라고 전해 주려므나.
친구야!
시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나하고픈대로 산발적이고 순서없이 마치 미친아이처럼 이렇게 지껄여 되는구나. 마음에도 없는 수식어는 쓰고 싶지 않아.
친구야!
갑자기 보고 싶다...너무 보고 싶다. 달려올 수 있음 어디 한번 달려오려므나. 아마 넌 바닷물에서 자맥질을 하며,갈매기들의 끼룩거리는 소리를 들으며,흰구름이 떠도는 하늘을 바라보는 너희 섬친구들의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싱그러운 미풍에 머리를 휘날리며 초하를 노래하는 여기에 새로운 친구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노는 시간 허밍으로 웅얼되는 감미롭기까지한 소리를 들으며 이
편지를 끝내려 한단다.
친구야!
묻고픈 것이 있으면 물어봐봐.
그리고 나에게 하고픈 말이 있으면 역시 주저하지 말고 얘기하기를 나는 원해.
장미꽃 향기가 코끝을 스치어가는구나.
그럼 다음 소식때까지 몸건강히 잘있어. 안녕히...
영등포에서 너의 영원한 친구 솔이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