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사망 시 디지털 기록을 어떻게 처리 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9

Fall in love with coffee


BY 정아진 2005-05-31

어느덧 내 인생서 커피는 애인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날씨가 우중충하고 가슴 시린 날 커피 한 모금 생각이 간절하다. 커피 탈 때 마치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처럼 확 퍼지는 커피 향내에 난 미치도록 감동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힘든 육아에 그리고 무미건조한 가정생활에 내 자신이 너무나도 무능력 하다는 것과 그런 생각으로 우울해 질 때면 커피란 친구는 나에게 어떤 말도 묻지 않고 옆에 가만히 있어주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마실수록 뭐라 할까 시체 같기만 한 내 삶에 약간은 활력소가 될 수 있는 들뜬 느낌을 선사해준다. 약간 쓰디 쓴 커피 본연의 맛에 도리질이 쳐지지만, 싫지 않은 그 묘한 매력이 있는 커피가 난 너무나 정겹다. 이렇게 보면 커피와 사랑이란 감정은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약간 쓴 커피처럼 사랑이란 감정도 마냥 달콤하기보다는 가슴 아프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쉽게 잊을 수 없고, 오히려 사람들은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니 말이다.



철없는 어린 나이에 난 결혼하여 이렇다 할 이웃 아주머니도 많이 못 사귀고 외로운 신혼살림을 보냈다. 지겹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긴 하루를 보내면서 난 목이 빠지게 신랑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에 절은 신랑은 오자마자 참새처럼 지저귀는 아내의 수다가 신경에 거슬렸던지 무심한 대꾸만을 할 뿐이 었고, 난 날이 갈수록 신랑과의 대화의 장벽을 느끼게 되었다. 외로움과 서글픔의 시간동안 찬장에 있는 커피 믹스 한 봉지에 더운 물을 부어 먹는 그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과 달콤하고도 쌉쌀한 묘한 매력과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그 맛에 흠뻑 취하게 되었다. 커피가 이제는 내 애인이자 생활의 낙으로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몇 달이 지난 후 난 둘째 아이를 갖게 되고, 의사 선생님께서 임신 중이더라도 하루 한 잔 정도의 커피는 괜찮다고 해서 간간히 커피와의 밀애를 즐겼다. 하루 한 두잔 정도로 제한하는 임신 중 커피는 그렇게나 아쉽고 감미로울 수 없었다. 어른들은 커피 마시면 까만 피부를 지닌 아이가 태어난다고 금기시 하지만, 난 그런 허무맹랑한 속설보다도 현대 의학을 믿었고 그런 결과 무사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산후 조리기간에 갑자기 얼음 동동 띄운 냉커피가 너무도 먹고 싶은 것이었다. 밖엔 이미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이었고, 그 엄동설한에 냉커피가 먹고 싶어 미칠 지경 이었다. 창밖엔 두꺼운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웃으며 지나다니는 것을 보며 마치 감옥살이 하는 듯한 답답한 느낌과 함께 눈을 보고 미친 듯이 뛰어나가는 강아지처럼 훌훌 털고 나가버리고 싶었다. 이런 현실과는 걸맞지 않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무겁게 짓누르면 짓누를수록, 이 답답한 마음을 확 뚫어줄 듯한 냉커피 생각이 너무나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냉커피 한 잔만 먹어봤으면…….산후 조리 기간만 끝나봐라. 얼음 왕창 띄운 냉커피를 꼭 먹고 말리라.'

산후 조리 기간만 끝나면 원 없이 냉커피를 먹어보겠다는 한 줄기 희망으로 답답하고 우울한 산후 조리기간을 이를 악물며 참아내었던 것 같다.



드디어 약 한달 반 정도의 조리기간이 끝난 후, 마치 난 감옥에서 석방된 죄수처럼 너무나도 자유롭고 설레는 맘으로 밖으로 나왔다. 전날 내린 눈으로 이미 빙판 길이 되어 버린 도로도 너무나 정겹게 느껴졌다. 빙판 길도 무섭지 않았던지 나의 애인 커피와의 재회에 대한 설렘으로, 난 서둘러 커피 전문점으로 걸어갔다. take-out 커피 전문점 간판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설레고 기쁜 마음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본 느낌이라 할까? 아무튼 난 마치 정신 나간 여자처럼 커피전문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아이스 모카 주셔요."

쌀쌀한 겨울에 어울리지 않은 얼음 가득히 채워져 있는 아이스커피는 오히려 이제껏 답답했던 생활들을 따사로이 위로해 주고 있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아이스커피의 느낌은 나에게 충만한 행복감과 시원스런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이렇듯 인생의 행복은 거창하거나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단 돈 몇 천원의 아이스커피에 난 이리도 감동하고 행복해하니깐 말이다. 그 날 이후로 난 더욱 커피의 매력에 심취해 있었고, 마치 정겨운 애인처럼 항상 곁에 두게 되었다. 기혼 생활에서 무료함과 상실감을 느끼게 될 때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이렇듯 나에게 심신의 안락함과 소박한 기쁨을 안겨주게 된다. 또한 가을 낙엽이 흩날릴 때, 창밖을 바라보며 호호 불어 먹는 더운 커피도 굉장히 운치 있으며 커피와 함께 일상을 벗고 사색에 잠겨본다면, 꿈과 낭만을 어느덧 잃어버린 기혼 여성들에게 지난 날 꿈 많은 낭만 소녀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어 줄 것 같다. 무료한 결혼 생활에 한탄을 하기 보단 나처럼 때론 커피 한잔에 감동을 받으며 간간히 글을 써봄으로써 문학소녀의 기분으로 되돌아 가보는 것도 참 좋을 듯싶다.



태양의 강한 입맞춤의 계절 여름이 다가왔고, 이제 더운 여름이 되어 매달리며 징징 대는 아이들 때문에 비지땀을 흘려댈 것이다.오늘따라 따스하고 안락한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조용히 커피와의 밀애를 즐기며 인생의 추억과 경험들을 하얀 종이 위에다 적어보고 싶다. 아름답지만 가슴 시린 나만의 추억들…….아마 커피와 함께 한다면 그리 서글프지는 않을 것 같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계절 여름에 커피와의 소중한 추억을 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