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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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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자구?


BY 낸시 2005-05-18

퇴직하고 이민을 결정하는 일이 남편에겐 참으로 힘들었다.

직장에서 일이 잘 풀려나가고 있었다.

친분이 돈독하고, 능력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다음 진급은 결정된거나 다름없는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고지가 바로 저긴데...정상이 눈 앞에 있었던 것이다.

폐암을 핑계로 퇴직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사실 핑계였다.

수술만 하면 방사선 치료도 받을 필요가 없는 초기암이었으니까...

모두들 말렸다.

남편도 망설였다.

말단 때와 달리 진급에 따른 급여도 많이 달라질 터였다.

승진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어 보였고 따라서 전속운전사도 딸릴 것이고, 퇴직금도 해마다 차이가 많아질 것이다.

아이들 교육도 노후도 염려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강남에 있던 아파트, 적지 않은 퇴직금... 하지만 놀고 먹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돈이었다.

이민을 결정하고 난 후 미국은 생소한 나라였다.

예전에 우리가 살았던 경험이 소용이 없었다.

우선 입국심사 때부터 달랐다.

면책특권을 가졌던 시절, 우리에겐 입국심사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민비자를 들고 통과해야 할 입국심사대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심사대상이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굴욕감...하지만 겪어내야 할 일이었다.

면허시험도 없이 나오던 운전면허증, 면책특권을 가진 사람이 소유한 차임을 알려주는 번호표지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면세카드... 모두 옛날 이야기였다.

의료보험도 없어졌다.

미국에선 변호사보다 의사보다 수입이 많다는 낭설이 퍼져있는 공인중개사, 둘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얻어냈지만 남편은 견디지 못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기꾼 취급하는 것 같아 싫다고 하였다.

남들에게 대접만 받던 경험을 가진 사람에겐 힘든 일이었나보다.

 

도와주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편히 돈도 벌고 먹고 살 수 있을 것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다만 남편과 생각이 다른 내가 그의 아내였다.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은 경험이 없는 내가 주도해서 일을 벌이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무엇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나는 주장했다.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남편과 이혼까지 불사하겠다고 강경하게 나갔다.

이민을 주도한 것도 나였다.

남편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내 맘이 이미 정해진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맘에 들지 않는다.

맘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고, 아들과 내가 하는 일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때도 있다.

내가 하는 말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큰소리치는 내가 허풍선이처럼 느껴져 밉기만 하다.

그래서 날더러 이혼하자고 할 때도 있다.

예전에는 부부싸움을 해도 이혼하자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이혼하자는 내게 자기가 날 사랑하는 것을 그렇게도 모르겠냐...고 답답해 하던 사람이다.

남편의 입에서 이혼하자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더 강하게 나갔다.

그래, 하자구... 그 말 나오길 기다렸네... 당장 변호사에게 가자고...

두 번, 세 번...

싸우면서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음을 안다.

내가 이혼하자고 할 때, 자기가 날 사랑하는 것을 그렇게도 모르겠냐고 하던 남편의 맘을 이해한다.

그래, 미안해... 미안하다고...당신 맘 이해해... 힘든 것 내 다 알아...

하지만 이혼은 못해... 나 당신을 사랑하거든... 이렇게 초라하고 불쌍해진 모습으로 당신을 쫓아낼 만큼 모질지도 못하거든... 빚진 사람 같은 내 맘도 좀 이해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