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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BY 아낙 2005-05-18

 

* 아버지 *


며칠 전 아버지가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암, 이란 단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27년 전 엄마가 암 투병 할 때의 머리 빠진 엄마가 생각이 나서 속상했다.

하고 많은 엄마의 모습 중에 왜 하필 그 모습이 떠오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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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의논하다 결국 수술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암 수술하는 것보다 수술 후의 고통을 겪어 보았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가 한 참 우시더니 검은 콩 우유랑 빵 사달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빵 하고 우유 그리고 좋아하시는 떡도 덤으로 사드리고 나왔어.” 하는 언니의 말이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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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7세 되는 아버지. 20년을 군 생활로, 20년을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고, 10년 넘게 형부가 하는 건설회사에 인력관리를 해왔는데, 이젠 자신의 몸에 신경을 써야 하나보다.


울었다.

엄마가 죽고 아버지의 방황을 보았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에도 엄마가 없을 때에도 아버지 주변에는 항상 여자가 있었다. 여자 없이는 못 사는 게 아버지이다.

지금까지 세 번 새엄마가 바뀌었다. 난 첫 번째 새엄마에게만 엄마라고 불렀고 그 이후 지금의 여자까지는 절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도 그냥 “잘 계시죠?” 하는 말만 할뿐 엄마라는 소리는 내 입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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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아버지를 보며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

삶은 다 그런건데 왜 그리 힘들게 살아가는지.

덧없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난 덧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아버지에게 난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

나도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아버지처럼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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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아저씨라고 한 적이 있다. 배를 타는 아버지가 일년 만에 오곤 했는데 그때 난 아버지란 단어를 잊어버렸던 거였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웃었다가 울곤 한다.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눈물로 변해버린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초등학교 시절 난 말이 없는 아이였다. 그냥 집 한 구석에서 사람들의 행동만 관찰하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 그게 나였다. 그런 내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 뒤 걷잡을 수 없이 달라지는 나를 나 자신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용암처럼 터져버린 내 마음은 한동안 내가 누군지를 잊고 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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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모가 되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하니, 내가 참 힘들게 했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아버지이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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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그냥 하늘만 보고 지냈다.

슬프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솟아오르고 솟아오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늘만 보고 있었다.

한동안 죽음이 뭔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사는 게 버겁게 느껴진다.


죽음과 삶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

죽음과 삶은 가장 친한 친구 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의 유혹은 달콤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의 유혹에 잘 빠지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