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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천상에서 외출 나오시는 날


BY 김미애 2005-05-07

** 천상에서 외출 나오시는 날

 

  오늘을 기다리시면서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며칠전 엄마 꿈에 아버지께서 맨발로 오셨다고 했다.   엄마랑 같이 계시던 동네아줌마가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오셨다냐며 화들짝 놀라시는 걸 보신 아버지께서 손사래를 치며 "나 안죽었어라우."하셨다고 했다.

  살아 생전에 생신때면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 경비 축나고 고생스럽다고 안와도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변변한 생신상 한번 못받으시더니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야 철이 들었는지 먼길 달려온 자식들을 쭈욱 훑어보며 "너도 왔냐?"고 흐뭇해 하셨을까?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린 것은 둘째 아들이 당신의 손녀딸을 낳았다는 소식이겠지.

온 식구가 다 모여앉아있는 자리에 아버지께서도 당신오심을, 그리고 아직 예정일도 안되었으면서도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싶다고 제사 하루 전 날  태어난 손녀딸 소식에 흐뭇해 하심을, 천상에서 잘 계심을 알리시려 하셨을 텐데 아무도 못알아보고 우리들끼리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보시고 얼마나 낙담하셨을까?

  "언제든지 오세요.  딸내미랑 손자 손녀딸이 보고싶으시면 언제든지 오세요."하고 병상 머리맡에서 속삭이던 딸내미는 알아보겠거니 하셨을, 믿었던 딸내미마져 묻는 말에 대꾸도 없이 딴청을 피우는 걸 보시고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을까?

  "양서방이 다리가 그렇게 아파서 어쩌끄나?  그대로 놔두면 안될텐디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 한 번 받아봐라.  얼른 나아야 할텐디 어쩌끄나?"하고 연신 못내려온 사위 걱정해 주셨을 아버지.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그간 못나눴던 정을 짧은 시간동안에 얼른 풀어놓으시랴 맘이 급하셨을 아버지.

아버지 오심을 정성으로, 그러나 두서없이 차려놓고서 생전에 좋아하시던 소주 한잔 따라 드릴때

"홍동백서가 아니면 어쩐다냐?  그깟 격식이 다 뭐다냐?  괜찮다.  뭘 이렇게나 많이 차렸냐?"하셨을 맘 좋은 울아버지.

가족들 모습 한번 더 새기시고 홀로 쓸쓸히 시골집을 지키시는 엄마가 밟혀서 어쩌그나!  니 엄마 잘 부탁한다.  신신당부하셨을 아버지.

꿈속에서 뵌 아버지께서 맨발인 것이 맘에 걸려 새 양말이랑 속옷을 사다 강진 5일 장 봐다 마련한 제삿상 밑에 고이 두셨다가 아버지께서 귀천하시는 길에 신고 가시라고 태워드리려 문 밖으로 나가시던 친정 엄마.

너무나 허망하게 가신 님을 그리며 땅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바람이셨을 터‥‥‥.

 "예말이요!(엄마가 아버지를 부르던 호칭) 이 엄동설한에 맨발이 웬말이다요~?" 엄마가 신으시라고 내민 양말 신고 또 오마! 하고 가시는 길에 울엄마 당뇨 걱정하시며 뽕잎 말려 차 끓여 먹으라고 당신이 손수 심어 놓으신 뽕나무랑 화단에 심어놓은 유자나무, 밤나무, 그리고 텃밭에 가지 앙상한 감나무들에도 눈길 한번 주시고 당신의 손길이 배어있는 텃밭도 둘러보시고 이번 한파에 수도꼭지는 안얼었나?  화장실 변기는 고장이 안났나?  보일러는 잘 가동되는지 집안 곳곳을 휘둘러 보시고 그래도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을, 뒷걸음으로 가셔야 했을 아버지.

오랜만에, 오늘을 손 꼽아 기다렸는데 아무도 못알아보는 걸 보고 당신이 다른세상에 속해 있다는 걸 절감하셨을 아버지.

세상사 덧없음을‥‥‥.

살아 생전의 따뜻한 밥 한 공기에 묵은 김치가 낫지 돌아가신 연후에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 놓은들 무슨 소용이리오?

  아버지!

누구나 한번은 가야한다는 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걸요.

여전히 아버지께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그렇게 허망하게 가신게 실감이 나질않고 뵙고 싶을때 뵐 수 없음에 가슴이 무너지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뵈올 날이 있으리라 믿어요.  그리고 내마음속엔 항상 아버지가 살아 계시므로 이젠 슬퍼하지않을래요.  지금쯤은 아버지도 천상의 세계에서 잘 지내시리라 믿을게요.

다시 만나 뵐 그날까지 평안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