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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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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영정사진


BY 섬진강 2005-05-01




 남편의 책상 위 벽에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쓰일 영정 사진이 걸려있다. 

너저분하게 걸어두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매번 다툼을 벌린다.

내가 사진을 내려놓으면 남편은 걸어두고 다시 또 내리면 걸어두기를 반복하다 남편이 마침내는 화를 내며 고함을 친다. 


“이 방에 들어오지 마, 청소 같은 거 안 해도 되니까” 


회갑기념 때 찍었다는 초상화 사진이니 벌써 스무 해도 더 되어 빛이 바래고 모습도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사진이다. 

그러나 남편은 당신 어머니 모습이 지금보다 젊어서 좋고, 함께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다며 고집을 피우는거다.

 결혼 초 우리 집에 다니려 오신 시어머니의 방에 남편이 베개를 안고 가면 막내라며 어리광을 다 받아주던 정이 철철 넘치는 모자였다. 

남편이 그처럼 따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학교 때 내 삶의 구심점이었던 돌아가신 친정 엄마 생각이 간절했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숨바꼭질하는 철없는 아이처럼 나는 어머니의 부재를 시시때때로 술래가 되어 찾고 있었다. 

결혼을 한 뒤에도 그 버릇을 쉬 버리지 못하고 나는 시어머니로부터 어른으로서의 합당한 지지자로 내리사랑의 인자함을 찾길 바랐다. 

지극한 공(功)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당당하고 빈틈없던 자존심과 일상을 넘나드는 자잘한 간섭이 어른의 당연한 가르침이라 여겼지만 나에게는 가로막힌 벽처럼 보였다. 
 
 첫 아이를 낳고 얼마 후, 나의 첫 번째 시련은 맹장염 수술로 시작되었다. 

나쁜 것은 빈틈을 잘 노리는지 수술 후 내 몸은 회복을 미룬 채 패혈증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병명으로 가족들에게 근심의 무게를 얹어주었다. 

그 때 중환자실이란 곳에서 느꼈던 무서움과 공포는 생과 사의 갈림길을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벌겋게 달아오르는 화로를 끌어안은 것 같은 열과 오한을 하루에도 몇 번씩 넘나들며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고통을 참듯 삭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아픔이었다. 

 두어 달 만에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지만 시어머니의 마땅찮은 내색은 병실에서 겪었던 내 고통의 시선이 머물던 흰 벽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이웃집 여자에게 친정어머니라도 방문할라치면 내가 가지지 못한 복에 대한 부러움으로 목이 메여왔다. 

친정엄마의 대한 그리움으로 시어머니로부터 온화하고 애정 어린 위안을 얻고 싶었던 나의 애끓는 바람은 공염불일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 집에 다니려 오신 시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넘어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된  어머니는 허리 근육이 경직된 상태이며, 골다공증으로 인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으로 위중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주의에 어머니는 꼼짝을 못하자 모든 수발이며 대소변까지 내 손으로 처리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지로는 일어서지도 앉아 있지도 밥 한 숟가락 혼자 먹을 수 없다는 것에 당신은 의기소침해 졌다. 

 

 어머니를 돌봐 드리는 것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침묵으로 자신을 무던히도 삭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난날 내가 경험했던 흰 벽의 차가움을 당신도 알 수 있었을까. 

그동안에 나를 힘들게 했던 그 감정대로라면 당신에게 고함도 질러보고 심통을 부려 나도 당신으로 인해   힘들다는 내색을 하고도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뜻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어있는데도 기분이 우쭐해지지 않았다. 

 입원한 지 한달이 지난 어느 날,  나에게만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다며 부산의 큰 댁 쪽으로 옮겨가시겠다는 것이었다. 


“아가! 늙은이는 날마다 생각한다는 짓이 지우는 것 밖에 못하나 보다. 아무리 기억을 해 봐도 너에게 잘해 준 것이 생각나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어머님은 너를 미워한 적이 없으니 서운한 것이 있으면 잊어버리라는 당부를 하셨다.   어찌 이십 년 쌓인 미운 정 고운 정이 망각해 가는 당신 기억하나로 지워질 고부간의 역사이겠는가. 

그렇게 한 치도 빈틈없던 당당함이 세월 앞에 몸의 쇠약함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당신의 나약함이 마음이 뒤숭숭했다.

 세월이라는 시간은 감정마져도 무뎌지게 하는 면역성이 생겨 어지간한  감정은 정화(淨化)가 되나 보다. 

 

 세월의 질곡들을 삭이며 오래도록 당신이 우리의 버팀목이었다는 것을 이해의 눈으로 보려고 한다.

남편의 방에 방금 사진관에서 찾아온 새로운 사진이 걸려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에게 내 친정엄마의 정을 바라지 않고있다.

내 엄마이기를 바라는 욕심에서 나의 벽이 생기는 것이고

시어머니 당신이 내게 바라는 며느리이상의 욕심은 당신의 몫으로

남겨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