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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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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하는 봄은 그랬다


BY 최지인 2005-04-19

 
작가 : 최지인
 

언젠가 엄마가 지나는 말처럼 그랬다
<옛사람 덜이 이르기를 새댁이 김장 서른 번 담그면
인생의 뜨거운 봄날은 다 간 거라고 허드라>라고.

 

아들녀석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파트 옆 산길에 수북히 떨어진 벚꽃 잎을
실내화에 그득 담아와서는 싱긋이 선물이라고 내밀던 순간,
그래, 그때는 봄의 절정이었다.

 

앞 베란다에 죽 깔아 놓고
그 옛날 잔잔한 돌이 빼곡하게 깔린 뒤란 장독대 위에
서럽도록 예쁘게 쏟아져 내리던 복사꽃 잎만큼은 아니어도
순간의 착각에 아들녀석이 너무도 고맙고 대견한 요즘이었다.

 

장뚜가리를 열어 장을 풀 때마다 한 두 잎 장독 안으로
사뿐히 떨어지는 꽃잎을 그윽이 들여다보며 엄마가 그랬던가.
"하이고야, 참말이지 환장하게도 이쁘다야. 니가 봄이너".
그러면 금방 푼 고추장 종지 위에 한 잎 복사꽃 잎이
사뿐히 내려앉으며 엄마에게 꽃잎은 그렇게 속살거리진 않았을까 .
"아줌마, 작년에 피었던 꽃이 올해 핀 꽃이 아니듯
해마다 봄은 늘 새롭게 태어나는 거예요. 사람들도 나이 들수록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따로 있는 게 아니겠어요".라고--


늘 바쁘게 종종걸음 치던 엄마가 그 때만큼은
꼭꼭 동여맨 머리 수건을 살짝 벗겨내며 손 차양을 하고
한참이나 복슬복슬 꽃구름 같은 복사꽃을
발그레한 시선으로 올려다 본 걸 보면 말이다.

 

보이진 않았지만 합일된 교감의,
어떤 신비스런 대화가 충분히 오고갔음을
꽃잎 주워 모아 소꿉놀이하면서 흘낏흘낏 쳐다본 눈길에 느껴졌는데
그런 날은 저녁 밥상 위에 놓인 고추장 종지 위에
일부러 몇 장 더 얹은 꽃잎 위로
부모님의 비밀스런 눈길 대화가 오고 가고
잠도 안 오는데 빨리 자라고 채근하는 윽박지름이 있었다.

 

베란다에 널렸던 봄은
이젠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꼬들꼬들 비틀어졌다.
이렇게 내 눈앞에서 한 계절이 말라간다.
더 이상 방치하는 건 나의 헛된 욕심이고 이기심일 뿐이다.
물과 함께 싹싹 빗자루로 쓸어 내린다.

 

그래, 내 인생의 그 많은 봄 중에
뜨거운 한 시절이 또 흘러간 거다.
우린 모두 이렇게 새댁의 시간들을,
뜨거운 인생을 잊어 가는 거다.

 

아~~ 하지만 뭐 그게 대순가
내년에 또 다가올 봄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