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후 임신하기 전까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고역이었다.
아침 잠을 자야만 하루를 겨우 버티는 나는
학교 다닐적 시험기간에도 6시 이전에 일어나는 법은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고전적"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늘상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체력싸움 이상의 고통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내가 서툴게 아침식사 준비하는 한시간 동안
좀더 자거나 엎드려 신문을 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억울함이 배가 될 수 밖에.
첫임신 때 입덧이 너무 심하여 일어나 앉을 수 가 없는 지경에도
하루 세끼 새밥을 지었다.
그래도 남편은 설겆이 한번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 남편은 기다려줄 수는 있어도 자기가 뭘 하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큰소리 않내고 기다려 주는 것으로 스스로를 무척 기특히 생각하는 것 같다.
드디어는 물냄새도 맡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울면서 설겆이를 하는데
스믈 다섯, 인생도 모르는 새댁이
여자 인생이 이런거구나 하는 신파조의 신세타령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
출산 후로는 아이 울음시계를 자명종 삼아
벌떡 벌떡 아침마다 잘도 일어났다.(아내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오후에는 견디지 못해 아이를 안고 졸다가 아이 이마에 머리를 대기 일수였지만.....
그때부터 저녁설겆이가 문제였다.
아 누가 제발 저녁 설겆이 좀 해 주었으면....
아이에 시달리고 (돌까지 천기저귀를 삶아 빨아 썼다)
아르바이트에 하루 세끼 식사.
생기다 말은(친정 아버지 표현) 체력으로 저녁을 지어 먹고나면
말그대로 몸이 의자에 퍼진 인절미 모냥 늘어 붙었다.
마루로 옮겨가는 남편을 보면 어찌나 부러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둘째를 낳고 거의 아사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느날 우연히 뉴스 직전에 무슨 드라마 뒷자락을 보니
부자집 마나님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마치고 거실로 나오면서
'오랫만에 입맛이 돌아 맛나게 먹었네
아줌마 ~ 나 커피 좀~' 하는 것이 아닌가
처녀때 그런 대목을 보았으면 아이고 커피는 좀 니 손으로 타 먹지
하며 잘난 척을 했는 나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래 바로 저거야. 여자 인생도 다 그런 건 아닌거지'
저녁 설겆이 안해도 되는, 좀 늘어져서 차한잔 하며
남편과 아이들과 여유를 부려도 되는 인생이 있었던 것이다.
작은 아이도 제 발로 화장실을 갈 정도로 큰 어느날
저녁을 먹고 혼잣말처럼 조그마이 말했다.
'아~ 나도 당신처럼 저녁먹고 느긋이 쉬고 싶다'
신문을 집어들며 아이들에게 농을 걸던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겠네'
그 후로 나는 가끔씩 너무 피곤한 날에는 먹은 상을 그대로 두고
가족과 함께 후식도 나누고 이야기도 하고
때론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해주진 못해도 기다리고 봐주기는 하는 남편이라
별로 불편해 않는 기색이다.
다만 놀러온 여동생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언니가 변한건가 아님 맛이 변한건가'
깔끔병과 체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늘 허걱거리며 살던 내가 변한 것을 보고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차마 맛이 갔다고는 못하고 맛이 변했다는 말에 나도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