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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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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몸이 되어야 하는 날


BY 그린미 2005-04-02

 누구나 듣기 싫은 소리하면 일단은 언잖거나 불쾌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비록 나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영양소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왠지 꺼리게 된다.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추기 전의 일이라면 더 당혹스럽고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일단은 빠져나갈 변명이라도 해야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나름대로의 상식을 동원해서 합리화시키고자 한다.

 옛부터 몸에 이로운 건 쓰다고 했지만 즉석에서 입맛 당기는 건 그래도 달아야 한다. 약이 안되어도 좋고 영양가 빠져나간 맹물이라도 좋다는 거다.

 쓴 소리 듣고 내 안에 축적시킬 수 있는 마음의 너름새를 배울려고 해도 그게 쉽지가 않다.

 

 그저께는 문인협회에서 신작 합평회라는 걸 가졌다.

 (이 협회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국문인협회 지방분회이기에 회원 모두 자부심이 하늘 찌른다. 월탄 박종화님과 미당 서정주님 그리고 김동리님과 조병화님이 이 한국문협 소속이었다.)

 주로 창작시를 가지고 회원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지만 말이 의견이지 이건 사람을 세워놓고 해부하는 작업이다.

 회원모두가 깐깐한 100% 기성작가들로 구성이 되었기 때문에 높히는 언성 만만찮다.

 토씨하나 부호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날카로운 비평 앞에서 난 등줄기 땀이 나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괜히 가입을 했나 하는 후회도 생겼다.

 그러나 함부로 회원 받아주는 곳이 아니기에 간신히 가입한 나 같은 경우엔 배부른 소리다.

 흔히 지나칠 수 있는, 나 같은 경우엔 아무 생각 없이 글 끝에는 마침표를 찍는데 이게 빌미가 되는 수가 있다.

 수필 같은 경우엔 어떻게 평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그 날은 창작시를 가지고 작가를 홀딱 벗겨 놓았다.

 왜 마침표를 찍었느냐 하는 거다. 내가 보기엔 하등의 시비 거리가 안 되는 부호라고 생각했는데 그네들이 보는 관점은 그게 아니었다.

 부호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10여분을 왈가왈부하는걸 보니 내가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없구나 하는걸 느꼈다.

 회원들의 지적과 비평을 듣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설명은 있으되 궁색한 변명은 금물이다.

 '잘 새기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미처 몰랐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 서는 사람들은 모두 초보작가들로서 선배 작가들에게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겸손하게 임해야 한다.

 회원들이 모두 등단작가들로 그 중에는 중앙문단의 심사위원도 있고  중앙지에 고정기고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전.현직 교장 교수들과 기자출신 언론인 출신 현직에서 내로라 하는 명함 내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나름대로의 자존심과 우월감을 가지고 사정없이 칼을 들이대었다.

 시 같은 경우엔 글이 짧아서 평가하는 시간이 짧을 것 같지만 수필은 글귀 하나하나를 가지고 날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서 있는 사람은 파김치가 될게 뻔하다는 생각이 미치자 오금이 저려오고 앉아 있는 자리가 바늘방석 같았다.

 과연 내가 저 자리에서 시퍼런 칼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면서 마음에 새기겠다는 소리 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겉보기에 씩씩하고 대범해 보이는 남자 초보작가가 선배작가들의 쓴 소리를 듣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표백되는 걸 보았다.

키워주기 위한 선배작가들의 회초리라고 받아들인다면 사약이라도 감지덕지 하면서 마다 않고 마셔야 하는 데 그 관문이라는 게 초죽음을 만들 것 같아서 죽을 맛이라는 거다.

 속이 와들거리는 소리를 냈다.

 합평회가 끝나고 지부장에게 은근히 죽는소리를 했다.

 "지부장님, 수필은 이런 거 안 해도 되죠?"

 물론 안 해도 되는걸 묻는 시늉으로 제스쳐를 써 보았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나를 절망케 했다.

 "아마, 준비를 해 두셔야 할겁니다..누구든 거치는 관문이니까요..작품 골라 놓으세요"

 "그냥 좀 넘어갈 수는 없나요?"

 "통관의례입니다만 너무 겁먹지 마시고 편하게 생각하세요"

 아.........나도 양파같이 홀딱 벗겨지겠구나..........

 다음달쯤에는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저녁으로 나온 갈비탕이 고무껍질 씹는 기분이었다.

 그냥 대충 넘어가기를 바랬던 내 바램이 얼마나 얕은 심보였는지 은근히 부끄럽기도 했다. 다들 맞는 매를 나만큼은 피해 갔으면 하는 이기심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리 기죽어서 어깨를 펴지 못하는 나를 보고 지부장이 농을 던졌다.

 "아까는 배가 고프니까 밥 생각 밖에 안 나더니 이젠 배부르니까 여자 생각나네....."

 모여 섰던 여자 회원들이 배를 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시퍼른 칼날 들이대던 그 망나니 같았던 아까의 표정과는 180도 곤두박질 친 악동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