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소리와 사오정
남편은 나를 사오정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반 귀머거리라는 것이다. 요즘 들어 그 증세가 심각해지는 것 같다. 가끔은 이비인후과를 한 번 가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봐야 막상 약도 없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데 수술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도 든다. 내가 사오정증세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갓 결혼한 직후인 것 같다. 시댁에서 TV를 보는 데 옆에서 뭐라 하는 것 같았다. 급기야 남편이 나를 꾹꾹 찔렸다. 할머니께서 물을 달라고 두 번이나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 때까지는 내가 집중력이 아주 좋다고 착각을 했다. 흔히들 그러지 않는가. TV나 책을 볼 때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하니까.
큰 아이를 임신을 하고 시골시댁에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할머니께서 당신이 손수 만들어 주신다고 해서 신이 났다. 그런데 마당에 있는 무언가를 가져 오라고 하셨다.
“예? 할머니?”
못 알아들었을 때는 몇 번이고 물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진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왜 그리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마당에 짠(?) 좀 가져오라고.”
“예???”
“마당에 ?? 좀 가져오너라. 몇 개 그냥 뽑아 오면 된다.”
“아~예.”
나는 또 한번 여쭈어 볼 수가 없었다. 갓 결혼한 며느리가 늙으신 할머니를 놀린다고 생각하실 것만 같았다.
‘뭔가 뽑아 오면 되는 거지. 김치도 짠지라고 하더니 무슨 사투리인가? 과연 지금 필요한 채소가 뭘까?’
나는 마당의 텃밭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마늘도 있고 고추도 있고, 깻잎도 있고 내가 잘 모르는 나물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지금 할머니께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다.
‘국수는 다 만들었고 상만 차리면 되는데...,’
나는 쭈삣거리면서 할머니께 말을 했다.
“할머니.......없던데요.”
할머니께서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굽은 허리로 총총 마당으로 나가시더니 파를 두어개 뽑아 오셨다.
“이게 안보이더냐?”
“어? 그게 어디 있었지.”
파! 파였던 것이다. 양념장에 들어갈 파였다. 손자며느리를 위해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국수도 끊어 주시던 할머니, 이제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 내가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그 때처럼 웃으시고 계실 것이다.
얼마 전 시어머니께 우리 집에서 며칠을 계셨다. 어머님도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무척 나를 이쁘게 보아 주셔서 나도 잘해 드리고 싶었다. 끼니마다 올리는 반찬도 신경 쓰고, 방을 몇 번씩 걸레질하면서 부지럼을 피었다. 그런 내 모습이 남편은 기특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파김치가 다 되어 방에 들어오니까 남편이 나를 보고 뭐라 뭐라 하는 것이다.
“응??”
“응, ????한다고.”
“뭐라고?”
“어머니 때문에 ????한다고.”
“뭐라고?”
“으이구, 이 사오정, 됐다. 됐어.”
남편은 천둥같은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발칵 내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하도 소리를 지르니까 내가 가는귀가 먹었지. 결혼하기 전에는 안 그랬단 말이야.”
씩씩대며 방을 나가려는 남편을 잡고 나는 또 물었다.
“근데? 뭐라고 했는데?”
“고생한다고 했다. 니 지금 내 놀리제?”
그러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습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졸도를 절도라 듣기도 하고 물을 달라면 쥬스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처럼 나의 사오정 증세가 심각해진 데는 남편의 목소리가 한 몫을 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남편의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말 그대로 천둥소리이다. 소음이나 큰 소리에 자주 노출되면 귀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은 상식이다. 특히나 웃을 때 목젖을 뒤로 젖히면 천둥소리가 터져 나오는데.......하!하! 하! 얼마나 소리가 큰지 주변 사람들은 웃다가 깜짝 놀라기 일쑤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르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나 역시 남편의 목소리가 큰지 자각하지 못하였다. 우리 집 첫째 녀석이 목에 핏대를 세우면 말할 때까지.
“자기 목소리가 커니까 아들 목소리까지 커네. 이젠 사운드로 천둥이 쳐서 죽을 맛이다.”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 커다고 안 해?”
아무도 그런 사람들 없다고 한다. 나는 실눈을 뜨고 남편을 노려보았다.
“자기 회사 사람들 다 목소리 커지? 그래, 늘 전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들어서 그런 것 아니야? 소음에 오랜 시간 노출 되면 귀에 이상이 생기는 법이야!”
(남편은 지하철에서 근무를 한다)
남편과는 그럭저럭 눈치로 듣고 우기면서 말하면 거의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는 문제가 달라졌다.
“숙제 다 했니?”
“수건 다 걸어놨어요.”
“뭐? 수건?”
화장실을 나오면서 아들이 툭 던지는 말이다. 수건을 바닥에 내던져서 며칠 잔소리를 했더니 숙제를 수건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옆에서 남편은 죽는다고 웃어댄다. 사오정 시리즈야 시리즈하면서......
“엄마가 경청하랬지! 특히 어른이 말을 할 때는 경청! 경청이 뭐냐?”
“무슨 말을 하는지 두 귀로 듣는 것”
“또?”
“마음으로 듣는 것. 가슴으로 새겨가면서 듣는 것.....그렇구나 하면서 듣는 것.”
“그래, 준비물은 다 챙겼냐?”
“예. 다 했어요.”
으이그. 이 답답아.........
여러분, 경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