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734

엄마, 나는 뭘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BY 낸시 2005-02-17

"아버지, 나 비행사가 될까?"
"좋지..."
"아버지 나 농대 갈까?"
"좋지..."
아버지는 내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내 진로에 대해 물어보면 무엇이든 좋다고만 하였다.
다만 대학 가기 싫다고 떼쓰는 나를  이렇게 달랬다.
"그럼 시험만 봐라.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 체면 좀 세워줘라.
시험도 못 봤다고 하는 것보다 합격은 했는데 안갔다고 하는 것이 나으니께..."
그럼 농대나 공대를 가고 싶다는 내게 언니가 말했다.
"가시내가 미쳤냐? 농대나 공대를 다녀서 뭐 할래. 영문과나 수학과를 가야 아르바이트 하기도 쉽고 나중에 취직도 쉽지..."
언니 덕분에 수학과를 졸업하고 쉽게 취직하여 선생노릇을 했다.
하지만 선생이 싫었다.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나는 아이들 앞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선생이 정말 싫었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의 대상 같아 창살없는 감옥같기도 하였다.
남을 가르칠 자격이 있나, 끝없는 의문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나 처럼 공부하기 싫어하던 남동생은 대학을 안 가고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하였다.
늦게 얻은 아들 하나에 기대가 크던 부모님은 많이 속상해 하였다.
재수하던 남동생은 학원도 등록만 해 놓고 다니기를 싫어했다.
이번에는 내가 남동생의 진로에 관여했다.
억지로 끌고가 학원을 다니게 하고, 입시원서도  대신 쫓아다니며 마감 날 겨우 접수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동생은 통신공사에 취직해서 여지껏 다닌다.
언젠가 동생이 그랬단다.
누나 덕분에 자기 진로가 바뀌었다고...
내가 선생 노릇을 해 보고 진저리를 치고 난 뒤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농사를 짓게 두었더라면 동생의 적성에 더 맞았을텐데... 후회도 되었다.

 

"엄마, 나는 뭘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딸이 물었다.
"너는 글을 쓰는 일에 소질이 있던데 그 쪽으로 뭔가 해볼래?"
"그것은 싫어..."
"그럼 날보고 묻지 말고 너 자신에게 물어라. 너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보다 너야, 그러니까 너 자신에게 물어야 돼..."
"난 잘 모르겠어."
"그럼, 더 생각해 봐"
"......"
나는 딸의 진로에 이렇쿵 저렇쿵 하는 일을 가능하면 삼가고 싶었다.
부모가 내게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았던 것이 살면서 새록새록 고마웠던 것이다.
언니마저 '내게 맡겨 주었더라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어렸을 적 농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내가 원하던 길이었는데...


"아들아, 넌 뭘하면서 살고 싶어."
아들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엄마"
"혹시 회계사 해 볼 마음 없니?"
꼼꼼하게 정리 잘하는 성격에 맞을 것도 같아 물었다.
"음, 그것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아."
"그래?, 그럼 좀 더 생각해봐..., 뭐든 쬐끔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뭔가 있을 거야... 그것을 찾아...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열심히 하게 되고 성공도 할 수 있어..."

 

진로를 고민하는  아들과 딸에게 반복해서 주입하듯 말 하는 것이 있다.
인생의 성공여부는 사람들이 말하는 부와 명예에 있지 않다.
얼마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나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급하게 굴지말고 모르겠거든 더 생각해 봐라.

 

진로를 정하지 못해 몇 년을 방황하던 딸이 드디어 찾았다며 의상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거라면  행복한 마음으로 열심히 할 것 같다고 하였다.
이태리에 있는 학교를 가고 싶은데 돈이 많이 들어 걱정이라고 하였다.
자신들의 경제력을 생각하지 않고 자식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해주고 싶어하던 부모 생각이 났다.
"우리 힘으로는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서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있는데 그래도 그 학교에 가고 싶어?"
"패션 공부를 하려면 거기 가서 하고 싶어.
중간에 그만 두는 일이 있어도 그 학교에 가고 싶어...
후회 안 할 거야...
기왕 할거면 최고를 가르치는 곳에 가서 배우고 싶어..."
"좋아. 그럼 한번 해 보자."
남편이 우리 형편에 벅차다고 난리였지만 난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내일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이번 학기 학비를 낼 수 있으면 가는 것이지...

 

아들이 일년 남은 학교를 그만 두고 엄마랑 같이 식당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자기는 음식에 대해 잘 모르니까 엄마가 메뉴를 개발하고 자기는 운영을 맡아서 하자고 하였다.
식당을 해보고 싶다는 것은 내 오랜 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들은 그동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재미있다는 것이다.
식당을 경영하는 일에 자기 미래를 걸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학교 졸업은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자기 학교 다닐 동안 들 학비며 생활비로 식당을 개업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단다.
"엄마를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결정한 것이면 안 된다.  엄마가 누누이 강조했지만 성공한 인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
"엄마, 정말로 식당을 경영해 보고 싶어... 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아..."
남편은 아들이 대학 졸업을 포기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화를 냈다.
이번에도 나는 아들 편이 되었다.
내 부모가 내가 원하는 일을 해주고 싶어했듯이 나도 아들이 원하는 일을 이루게 하고 싶다.
그것이 남보기에 하찮은 일이어도 상관없다.
내 아들이 원하는 일이면 내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