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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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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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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BY 밤톨냥v 2005-02-11

 

설날 아침..

서둘러 차례를 드리고

전이며 나물이며 명절음식 바리바리 싸들고 아버님 뵈러 갈 준비를 하는데

신랑 코트를 잠간 손봐야 할것 같네.

 

콧등에 하얀분가루 털어낼 새도 없이 털푸덕 주저앉아 다리미를 콘센트에 꼿는 순간

'치지직' 하며 다리미 선에서 노란 불꽃이 피어 오르더니 금방 빨간 불꽃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놀란 마음에 황급히 선을 뽑고 숨을 고르는데

글쎄..왜일까?

그냥 마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네..

 

전날보단 조금 더 차가워진 바람 옷깃 여며 차단하고

아버님댁에 도착 했는데

항상 그랬지만  문 열리자마자 문 옆 바로 달려있는 조그만 방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나오시는 아버님의 구부정한 모습에

잠깐 미간 찌푸리고..

'당신집인데 왜 안방 차지는 고사하고 큰방도 있구만 하필 젤로 보잘것 없는 문간방에 아버님이 기거 하시는지 '

 

50 넘은 나이에도 언제나 화사한 복사꽃 같은 막내시누

뒤질세라 해사한 볼이 마냥 탐스런 막내고모부가 사람 좋은 미소로 맞아주신다.

어느 새 조그만 당신의 거처로 몸을 숨기신 아버님을 따라 잡으며

그 미소를 차갑게 외면했다.

 

침대 하나가 방의 삼분지일을 차지한 좁디 좁은 방에서

힘겹게 세배를 드리고 나니 또 부화가 치민다.

'저 넓디 넓은 거실 놔두고 왠 궁상이시래?'

'이집 분명 당신 집인데..'

 

짜증나는 마음 감추고 거실로 나오니 넓은 쇼파에 앉듯이 눕듯이 몸 기댄 체

티비에 시선 빼앗긴 고모부 모습에 또 다시 울컥..

 

언제 오셨는지 시작은아버님이 헛기침을 하시며  나오시니

황급히 몸 추스리시는 고모부.

"언제 오셨어요?"  " 응..아가 좀전에 왔네.. "

아직 입에 쓴물 한잔 축이지 못하신것 같아 서둘러 해온 음식보따리 풀어헤쳐

전날 진종일 맡은 기름냄새에 코를 또 쑤셔 박는다.

그제서야 주방에 나타나 "많이도 해왔네.." 하며 서두르는 시누..

가슴속에선 뜨거운게  울컥 치밀고

 

주섬주섬 이것저것 상 챙기는데

"아유..형님 많이도 해오셨네." 하며 삐죽이 얼굴 디미는 동서

또 한번 뜨거운게 불쑥 치밀어 오른다.

 

'이거 좀 빨리 손봐." 할일 지시하곤

한여자의 추임새에 맞춰 두 조금 젊은 여자 둘이 잽싸게 손을 놀린다.

근데 이상하다..

왜이렇게 조용한거지?

지금쯤이면 조카들 내외에 사촌형님들 내외..

시고모님에 그 자손들 까지 북적거려야 하는데..

 

그러고보니 막내시누가 집을 지키고 있네?

헛헛헛..왠일이래?

궁금했지만 미리 앞질러 물어 보기 싫어 그저 묵묵히 할일만 한다..

 

 

몇 안되는 식구 푸짐하게 차려낸 음식으로 점심 훌륭히 끝내고

후식까지 끝냈는데도 아직도 잠잠하네..

별일일쎄..

슬쩍 시누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네..

"오늘 아무도 안오신대요?"

그제서야 시누 속상해 죽겠다는 듯

"몰라..올핸 왜 그런지 다들 설 지나 온다네.." '흣'

"어제 미리 외가쪽 손님 다녀 가셨고, 내일 이랑 모레 다들 오신다네.."

'헛..이게 무신일이래?'

괜히 삐질삐질 웃음이 비져 나오려 하는걸 억지로 눌러넣고

"어머 어떡해요..형님 큰일 나셨네.."

 

암케도 아버님 형제분들이 더 이상은 봐줄수 없었나보다.

떡하니 아버님집 차지 하고 앉아 아버님 문간방에 밀어낸걸 더 이상은 봐줄수 없었나보다.

이년만 살고 나가겠다 약속해서 들여논건데

제집인냥 차지하고 들어앉아 꿈쩍않는 그 모습

더 이상은 용납이 안되었나보다.

연로하신 아버님 시끄러운 소리 날까 두려워

사위 딸 눈치 살펴 당신 마음 표현도 못하시는게 안타까웠나보다.

 

어째 결혼해서 한번도 그런일이 없었는데

것두 아침부터 다리미에서 샛노란 불꽃이 보이드라니..

근데 기분이 그리 썩 나쁘지 않더라니..

 

음식 한가지 장만도 않고 단지 자기 이쁜 그릇 탈날까 싶어

그릇 나오는 족족 씻고 닦고 난리 치던 시누는 벌써 지친다는 듯

축 쳐진 모습이고

달랑 식용유 한병 싸들고 명절 맞으러 온 동서는

음식 챙겨갈거 없나 눈이 벌게 달겨들고..

내일,모레 음식 계속 써야 한다며 전 한쪽, 나물 한접시도 동서의 손 타는걸 허용치 않네.

흐흐흐..두여인네 노는양이 참 볼만하네..

 

살다보니 이런날도 있구먼..

아니지..

내가 일할 팔자는 아닌가 보네..

결혼해 십삼년을 둘째시모 당신 며느리 싸고 도는 탓에

그저 손님 처럼 명절을 맞았는데

돌아가시고 한 삼년 고생 하는듯 싶더니

욕심이 하늘을 치솟는 시누덕에 그 책임이 몽땅 시누한테 실려갔네

 

그거 싫으면 너 어서 아버지집에서 나와라..하시는것 같은데

글쎄...

저 집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려나?

참 돌아가는게 우리끼리 보기엔 아깝네..

 

서둘러 갈 채비 하시는 시작은아버님

우리까지 어서 가길 재촉하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도 떨어지기 전에 명절의 고달픔은 끝났다.

 

집으로 가는데 자꾸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맘 약하고 착하기만한 내신랑도 어른들의 뜻을 눈치챈 듯

간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버님집을 나서고..

 

친정에 가서도 편하게 식구들이랑 온천장에 가서

뜨거운 유황물에 몸 누이고 생각하니

골탕 먹고 있을 시누 얼굴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나오고

 

집은 차지하고 앉아 자식된 도리는 하지 않을려고 했던 시누..

순리대로 따랐으면 그런일 겪지 않았을 터

어찌 그리 욕심이 하늘을 찔러 어른들을 노엽게 한건지..

 

앞으로 어떻게 해결이 날런지는 모른다.

허나 벌써 전부터 순리대로 따르기로 마음 먹은 나는

차분하니 되가는 냥을 지켜 볼 따름이다.

 

근데

그 빨갛게 타오르던 불꽃이

상서로운 기운이었을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