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면 창가엔 햇살이 환장하게 다정스럽다.
그 햇살을 먹고 사랑초가 다정하게 피어 있다.
혼자보기 아까워서 아이들에게 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큰 딸아이는 슬쩍 보더니 고개만 끄덕이고,
막내아들은 내 옆에 앉아 꽃잎이 예쁘다며 쓰다듬어 주었다.
혼자보기엔 너무 아깝고 예쁘게 핀 사랑초.
손끝으로 건드리니 긴 꽃대가 낭창낭창 흔들거린다.
이름이 사랑초라 불리는 건 초록 잎이 심장모양이라서 그런 거라며 혼자 생각해 냈었다.
그러나 옆집 친구는 그러더군 사랑초라 이름 불리는 건 햇살을 따라 꽃잎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라고...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종일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사랑초는 햇살을 보며 그리움을 표시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꽃 색도 밝은 분홍색일지 모르지.
떡살 무늬가 찍힌 장롱을 살 때 이것보다 저렴한 장롱을 사야 엄마가 예산한 혼수감에
차질이 없었지만 엄마는 딸이 원하는 떡살 무늬 장롱을 사셨다.
결혼해서 네 번의 이사를 했지만 난 이것이 얼마나 힘들게 산 장롱인 줄 알기에 무겁고
둔탁해서 자리만 차지하는 장롱이었지만 남편과 헤어질 때까지 버리지 않고 데리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건 오래된 고가구를 좋아했던 나의 취향 탓이기도 했고
장롱을 바꿀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탓이기도 했다.
엄마네로 이사를 가야하는 싯점에서 장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골치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장롱뿐만 아니고 모든 게 다 그런 위치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장롱 안에 잠자고 있던 이불들도 잘 안 입던 옷가지들도 씽크 대에 편하게 앉아 있던
그릇들도 다 처치곤란을 겪어야했다.
식탁도 마찬가지였다. 둥근 쇠 봉으로 만든 철재 식탁은 낡아져 녹이 끼고 의자방석이
뜯어져 싸구려 솜이 허연 내장을 개워 내고 있어서 방석만 사다가 의자 허리에 묶어서
쓰던 거지만 버리려고 하니 그래도 아쉬운 감정이 솜처럼 삐질삐질 새어나왔다.
침대도 버렸다. 카페트도 버렸다. 친정집은 좁아서 거실에 깔던 카페트에 맞는 방이 없었다.
책상도 큰 딸 아이 것만 놔두고 아들 것은 버려야 했다.
버려야 할 것이 많아서 동사무소에 가서 버려야 할 것에 붙이는 스티커를 두 번이나
사 왔다.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도 한 묶음을 다 쓰고 또 사 와야 했다.
두 집 살림을 한 집으로 합치려고 하니 냉장고도 전자렌지도 겹치는 건 다 필요 없음이,
쓰레기였음이 되어야만 했다.
베란다에 지네들끼리 살던 화분들도 정리를 해서 버려야 했다.
사는 것이 심드렁해서 대부분의 화분들은 이사하기 훨씬 전부터 정리해고에 들어가고
있었기에 꼭 필요한 것들만 살아남아 내 집 베란다에서 의기소침하게 말소리를
줄여가며 새끼치기를 절제하며 살았던 불쌍한 것들이었다.
엄마도 꽃피는 화분을 유달리 좋아하던 분이라서 내가 이것들은 데리고 갈 거라고
했더니 데리고 오라고 허락을 미리 받아 놨었다.
이것들이 사랑초 화분 네 개였다.
큰 분 두 개는 항아리와 비슷하게 생긴 건데 막내이모가 처음으로 내 집을 사가지고 올 때
내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작은 분 두 개는 분홍색과 하늘색 유액을 바른 화분받침까지
있는 건데 사랑초를 옮겨 심었더니 잘 자라 꽃을 피우면 화분 색과 잘 어우러졌다.
버릴 건 다 버린듯한데도 이삿짐 차를 불러야 했다.
좁은 엄마네로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지 걱정이었다.
엄마도 이삿짐을 보더니 한숨을 먼저 쉬셨다.
엄마는 딸네 세 식구를 위해 안방을 비워 두셨다.
엄마는 거실로 엄마의 자리를 옮겨 놓고 애써 웃어 주셨다.
큰 딸아이는 멀건이를(개이름) 한쪽 겨드랑이에 끼고 부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자기 책상 정리를 했다.
엄마네에서 원래 살던 화분과 내가 가지고 온 화분 네 개가 합쳐 베란다는 복잡 다양해졌다.
베란다로 나가는 통로가 좁아져서 한사람씩 드나들어야 했고
그 사이에 멀건이 밥그릇이 화분 사이에 끼어 있었다.
멀건인 화분 사이에 놓인 밥과 물을 먹으려고 최대한 우리 엄마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걸어가서는 물도 흘리지 않고 얌전히 마시고 소리 나지 않게 발꿈치를 들어서
안방으로 들어와 아이들 품에 안겨들곤 했다. 멀건이에겐 아이들이 자기의 방어벽이었고
은신처였고 믿을만한 구석이었으니까. 하다못해 개도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데 큰 딸아이는
발바닥에 힘을 주며 걸어 다녔고 안방문도 짜증나는 대로 닫았다.
그럴 때면 엄마는 집 무너진다고 걱정 아닌 안달을 하시면 딸아이는 그런다고 집이 무너
지냐면서 언제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냐고 반항을 했다.
“엄마? 월세방이라도 우리 식구끼리 살면 안돼?”
자기가 월세를 낼 것도 아니면서 나쁜 기집애...
중간 끼어있는 난 엄마편도 딸아이편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올 가을이면 전세로라도 이사 갈 생각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인 아들아인 불평을 하거나 할머니에게 말대꾸도 안했는데 올 가을쯤 이사를
간다고 했더니 엄마 정말이예요? 하면서 누나 보다 환하게 웃으며 안방으로 달려가
풀꽃달력을 뒤적이며 이사 갈 예정인 10월 달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딸아이보다 어린 아들아이가 더 힘들었던가보다.
딸아인 못마땅한 표정을 걸쭉하게 들이대고, 반항하고 싶은 말을 멋대로 집어 던졌지만
아들아이는 심성도 여리고 나이도 어려서 감정 표시를 낼 줄 몰랐을 것이다.
엄마네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사랑초 화분 네 개를 좁다란 베란다에 들이 민지 세 번의
겨울을 맞았다. 멀건인 가슴 짠하게 잊어버렸지만 사랑초분 네 개는 제법 들꽃다운 여림과
부드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큰 화분은 남향인 엄마네 집 베란다에서 엄마의 깔끔함과 잔소리에 그리저리 적응이 돼 잘 살고,
두 개의 작은 화분은 내가 가게로 들고 왔는데, 가게는 반그늘이 져서 자라는 속도나 모양 세는
엄마네 살고 있는 사랑초보다 볼품이 없고 단정하지 않지만 요즘같이 추울 때 서로 위로하고
끌어안고 있어서 더 돈독한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이 소원하는 대로 올 해 가을쯤 작은 아파트를 살 계획을 잡고 돈을 모으는 중이다.
집 살 돈이 모자르면 전세라도 얻어 옮겨야겠다.
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주저앉고 싶은 풀밭에서 풀꽃을 찾아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맘 편하고 질좋은 삶이란 아파트 평수가 아님을 털 코트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가을쯤 집을 산다면 18평으로 잡아 두고 있다.
올 겨울에 유행하는 모자에 동물 털 달린 겉옷은 안 사 입었지만 벌써 입춘이 두 뼘 정도
가까이 다가섰다. 오지게 추운 영하의 겨울은 이번주를 고비로 멀어질 조짐이 든다.
집을 사면 사랑초 화분들도 같이 이사를 가게 된다.
더욱 더 때가 묻은 딸아이의 책상도 옮겨질 것이고, 엄마네 살면서 불어난 살림살이들,
아이들이 커가는 대로 커진 옷들, 고등학생이었던 딸아이가 대학생이 되면서 성숙되어진
물건들이 딸아이 책상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있다.
올 해 초등학교 최고학년이 된 아들의 살림살이는 더 간단해졌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한 바구니씩 버리다보니 누나한테 물러 받은 책만 남아있다.
어두워진 밤이다.
사랑초는 꽃잎을 숙이고 가는 줄기를 옹숭크리고 잠을 자고 있다.
내 속에 숨쉬고 있던 세상다운 삶에...넓은 평수나,털코트나,등 따습게 만들 남편이나,
일류대학에 합격한 자식이나, 이런 세상다운 삶에 흔들림도 잠재워야겠다.
무사한 휴일이었다.
사건이나 멋들어진 이야깃거리는 없지만
조용하고 자기 자신을 편하게 쉬게 한 일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내일은 일을 나가서 쉬었던 몸을 조여야겠지....
사랑초와 함께 그다지 행복하지도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