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
아직도 중학생인 아들의 새벽밥을 하고있다.
내 또래 친구들은 며느리를 본다 사위를 본다
야단들인데
나는 아직도 새벽밥을 해야하니
"아이구 내 팔자야"
행복에 겨운 비명이다.아들을 낳기 까지
내 마음 고생한게 얼마인데
이깟 새벽밥쯤이야 대수랴....
큰 아이 딸을 낳고 8년동안이나 임신이 되지를 않는다
무슨일인가 걱정도 했었고
시 어른들 눈치도 봐야 하고
어른들의 무언의 압력 그거 보통 심장으로는 견디기
힘들었고...
그러다 임신이 되어 아들딸 가릴것 없이 좋았다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 그것 만으로.
한데 아이를 낳고 보니 아들이다
"아버지 감사합니더"
난 눈물을 흘리며 계시지 않는 친정아바지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당신의 권유로 결혼을 해서 고생하는 딸이
그것도 외동 며느리로 살면서
아들이 없음에 걱정하시다돌아 가시면서
여떫 자식 다 유언을 하시면서
유독 내게는 하시는 말씀은
" 내가 죽어서 니게 아들을 하나 태어나게 해주께"
하시더니 그 약속을 지키셧나보다.
아버지가 내게 주신 태몽이다
아버지 산소를 가려면 동네 뒤 연못을 지나 산길을 가야하는데
꿈에 남편이 아버지 산소 갔다 온다면서
염소새끼를 안고 그 못둑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무슨염소를 안고오노?"
라고 묻는 내 말에 남편은
"아버지 가 한마리 주시더라"
그게 태몽인지도 모르고 임신을 하고 난후에야
아버지가 주신 태몽인줄알았다
지금 아들은 아주 튼튼히 건강하게잘크고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시작했고
가끔은 여자친구들한테 전화도 오고 그러는모양잉다.
아들의 커 가는 모습에서 난 삶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이야 아들딸 구별 않지만
내 또래 나이의 사람들은 그때만 해도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어으리라..
특히 외동에 시 어른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강박감은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늣둥이라서 그런지
아이가 집안의 분위기를 아이로 해서
좋은 역할을한다.
가끔은 나를 번쩍 들어 올려서
힘을 과시하기도한다.
아버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