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말
박 정애
생후 10개월 된 손녀가 어눌하게 한마디씩 하는 말이 귀여워 며느리와 전화를
걸때도 손녀 귀에 대라고 하면 울 때도 있고 때로는 전혀 말도 되지 않는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전화기에서 울리는 말소리를 감지하는 모양이다.
잠깐 짬을 내어 아들집에 들러니 “며느리가 어머니 수민이가 방금 잠들었어요.”
라고 한다. 자는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수민아 할머니는 네가 보고 싶어 왔는데 너는 할머니가 보고 싶지 않느냐?’ 혼잣말로 중얼거리니 우유병을 문체로 자던 손녀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더니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방긋 웃으면서 두 팔을 벌리면서 안아달라는 시늉을 한다.
애비 다음으로 31년 만에 태어난 우리 집 공주다. 형과 연년생인 작은아이, 어릴 때 둘 중에 누가 하나 데리고 가서 키워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지금도 가슴에 멍으로 남는다.
작은 아이한테 못 다한 사랑을 손녀께 쏟아 아들에게 미안함을 대신하고 싶다.
“어머니 애가 친가 핏줄을 아나 봐요.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친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좋아하질 안아요.”추석 때 친정 가서 하룻밤 자고 가려고 일찍 나서던 아들 내외, 수민이가 하도 울어서 잠깐 앉았다가 지금 집으로 가는 중 이라는 아들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난다.
한참 놀고 있는데 며느리친구가 와서 수민아 부르니 입을 삐죽이면서 나에게로 기어 온다. 이러는 손녀는 나의 게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으로 할머니를 좋아한다. 점점 자라면서 세상과 물들어져 어떠한 말로 나를 서운하게 하고 기쁘게 해 줄지는 모르지만 울고 웃는 모습으로만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는 지금의 네 모습을 영원히 가슴에 간직하고 싶다.
며칠 전 남편 생일이라 아들집에서 생일상을 차린다기에 내외가 가서 아들 직장이 있는 영남대학 교정을 손녀를 유모차에 태워 부부가 함께 밀고 갔다.
둘을 번갈아 보면서 방실방실 웃는 모습은 그 어떠한 아름다움을 모아도 이렇게 예쁠 수 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손녀께 푹 빠졌다.
얼마쯤 시간이 지체되니 유모차에 앉지 않으려고 뻗댄다. 울면서 안아 달란다. 그것도 할머니는 물리치고 할아버지께 가겠단다. 할아버지 목을 안고 뽀뽀도 한다. 부모 앞에 자식을 안고 으르는 게 아니라고 시아버님께 호되게 꾸중을 들은 뒤 좀처럼 아이들을 안아 주지 않던 남편은 오늘 손녀의 울음, 투정이 반갑기만 하다.
우-우 어-어 아빠, 엄마. 빠이빠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아빠 엄마란다. 지나가는 젊은이를 보고 아빠라고 하는 손녀가 안쓰러워 휴대전화로 아들께 잠깐 나오란다. 직장생활을 안 해본 사람처럼 근무 중인 아들을 부르기에 말렸지만 아들은 이내 나왔다. 예상치 않는 곳에서 아빠를 본 손녀는 반가운 표정을 온몸으로 나타낸다. 손, 발, 웃음 벌리는 팔 그 어떠한 언어도 이보다 더 정확히 다가올까?
말이 다른 아이보다 빠르고 가족을 잘 구별하는 딸이 똑똑 할 거라면서 며느리는 좋아한다. 유전인자를 가족으로 물러 받은 손녀를 두고 어디는 누구 닮고 어디는 누구를 닮았다면서 서로 좋은 점은 제 것이라고 내외가 가벼운 입 실랑이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놀이터나 주변에서 노부부들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서성거리면서 아이엄마를 기다리던 그 모습을 지금 우리는 하고 있다. 빨리 커 주었으면 하던 아들은 이렇게 제 아이를 우리 앞에서 맞이한다.
세월이 이렇게 덧없이 흐른 지금 지난 한 시점을 어느 누구에게 몽땅 뺏긴 기분이다.
수민아 너의 말이 빠르지 않더라도 어서커지 않더라도 할머니는 좋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향한 너의 순수한 마음 괴롭고 배고플 때 울고, 반가울 때 웃을 수 있는 지금 네가 가진 진실과 세상에 물들면서 이해와 득실을 따져 다가오는 경쟁자를 이기를 위한 아름다운 구사력을 가질 때 즈음에는 너의 진실은 이미 파괴되어 있고 물질은 너를 힘들게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겠지. 아-아 우-우 아빠, 어부바, 엄마 적은 단어지만 할머니는 세상에 모든 말들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