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툭하면 화를 냈다.
내가 가장의 권위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농담이라도 한마디 하면 굳어진 얼굴로 화를 벌컥내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곤 했다.
아이들이 자기 말을 안듣는 것은 내가 가장의 권위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기에게 맞서는 내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지랑 내랑 동갑인데, 같은 교실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는데, 지는 반말을 하고 나보고는 경어를 사용하라고 하였다.
나도 처음에는 그리해 줄 요량이었다.
그래서 지가 반말을 하거나 말거나 꼬박꼬박 경어를 사용하였다.
아이들을 닥달하여 아빠가 들어오고 나갈 때는 현관까지 따라가 인사를 하도록 가르쳤다.
부부싸움할 때 지는 상스런 소리를 입에 담아도 나는 차마 그런 소리를 입에 담지 못했었다.
지가 출가외인을 부르짖어 시집에만 잘하고 친정일에 모른척하라고 했어도 몇번은 참아주었다.
지가 날더러 맞벌이 하자고 하고선, 쉬는 날 지는 티비보고 날더러 별식을 해내라 하면 그리해주기도 하였다.
내가 선택한 남자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에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싶었다.
정말로 그랬었다, 지를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오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고,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입바른 소리를 시작했다.
한껏 폼잡고 무게 잡는 그에게 말했다.
"야, 너 다 잊었냐? 내 뒤 쫄랑쫄랑 따라 다니던 시절 다 잊었냐?
그 때 내가 말대꾸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지?
그러더니 내가 말대꾸한다고 얼굴에 핏대 세우냐?"
꼬박꼬박 쓰던 경어를 버리고 이렇게 말하자 그는 주춤했다.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았다.
경어보다 효과적인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엔 한발짝 더 나갔다.
"야, 올챙이 시절 다 잊고 너 신랑됐다고 정말 이럴래?"
인상을 쓰며 깡패처럼 말해보았다.
이번에도 효과가 괜찮았다.
자기랑 나랑 평등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도 깨달은 것 같기도 했다.
"야, 철수야. 그 서푼어치도 안되는 무게는 뭐하러 잡냐?"
한심하다는 듯이, 안쓰럽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며 이렇게 빈정거려 보기도 했다.
지도 자기가 웃으웠던지 픽 웃고 말았다.
그 뒤로 우리집 가장의 무게는 서푼어치도 안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 말이 맘에 들어 남편이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워보려하면 내가 애용한 때문이다.
결혼하고 이 십 년이 넘어 남편이 말했다.
자기가 직장에서 인기좋은 상사란다.
권위를 세우지 않고 아랫사람과 친구처럼 지내는 좋은 상사라고 인기가 있단다.
이 말을 듣고 생색을 냈다.
"모두가 각시를 잘 만난 덕이네..."
그가 히쭉 웃고 말했다.
"그 점은 나도 인정하지..."
옆에서 듣고 있던 동서가 거들었다.
"나도 아주버님이 말할 때 형님 덕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모두들 '하하하...'웃었다.
가장의 권위를 버린 곳에 웃음꽃이 만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