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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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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멈추지 않는 나의 꿈


BY 물빛하늘 2005-01-10

꿈이라 하면,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그때 나도 꿈이란 것을 꾼 적이 있었다. 여상을 나와
회계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나도 대학이란 것이 가고 싶어서 22살 되는 해에 방송통신대학에
응시를 했었다.

85년 그해에 방송통신대학에 국어학이란 학과가 처음 생긴 해였다. 그때의
꿈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서 잠들기 전에 일기와 시 한 편과 말도 안 되는
생활수필 같은 것을 긁적이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었다.

소설이란 것도 쓴답시고 말도 되지 않는 글들로 채웠던 노트도 있었으니. 당연 국어과에
들어가는 게 나의 꿈이 되어 고등학교로 가서 성적증명서를 떼어서 서류응시를 대행해
주는 곳으로 갔다.

길게 줄을 선 그곳에서 내 앞의 사람들이 "국어과"라고 말을 하면 원서를 받는 사람이
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보였다. "처음 생긴 과라서 너무 많은 사람이 응시를 해서
아마 이 성적으로 힘들 거 같다. 이번 방송통신대학 국어과에 합격하는 사람은 서울대 법대
가는 것 이상의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떨어져도 상관없으면 응시해라."

뭐 그런 내용의 말을 하면 응시하려고 한 사람들은 한참을 실랑이하다 다른 과로
정정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 차례가 되니 그 사람이 나를 한번 쳐다보고 응시 원서에 성적을
한번 보더니 "성적은 좋으시군요. 그렇지만, 떨어 질 수도 있습니다." "네, 알았어요. 그래도
국어과로 할 겁니다." 난 단오 했다. 국어과 아닌 과를 내가 갈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드디어 발표날이 되었다. 부산대학교 캠퍼스에 발표공지가 난다고 했으니 서면에서 부산대학교
까지 가는 그날은 '지하철도 밀리는 때가 있나?' 할 정도로 더디 가는 지하철에 더 조마조마해
지는 가슴을 안고 들어선 부산대캠퍼스에 많은 사람으로 부쩍거렸다.

공고가 난 곳에서 내 수험표와 이름을 확인하는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간 길은 어찌나 빠르던지 심장은 터져버릴듯이 쿵쾅거렸고 발걸음은 허공을
디디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었다. 하긴 내가 응시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 발표를 궁금해 하며 집에서 기다릴 사람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엄마가 들어오셨다. 그때 3살 아래의 남동생이 고3이었는데 대학시험을
치르고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 장학생으로 합격한 소식을 받은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싶다
그래서 항상 엄마는 콧노래를 부르고 다니셨다.

"엄마, ㅇㅇ때문에 요즘 살맛나지?"
"그래, 요즘은 자다가도 웃음이 절로 난다."
"엄마. 기쁜 소식 하나 더 있는데.."
"뭔대?"
"나 방송통신대학에 합격했다." 너무 자랑스럽게 말을 했는데 엄마의 웃음 머금은 얼굴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했다.
"엄마 안 기뻐?"
"지랄하네 가시나! 동생 앞길을 막아도 유분수지, 네가 정신이 있냐? 없냐?"
"무슨 말이야?"
"우리 형편에 너까지 대학을 가면 어쩌겠다는 거야. 네 동생은 장학금으로 가지만 입학할 때
옷이라도 사 입혀야 하고 대학은 책값도 만만찮다 하는데 그리 생각이 없냐?"
"..........."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아들과 딸의 구별을 좀 하는 편이었다.

"엄마는 내가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방송통신대학으로 간 거지. 그 학교는 학비도 얼마 안 들어
그리고 내가 직장 다니면서 공부하면 돼. 엄마에게 일원 한 장 달라 하지 않을 거야. 걱정 마!"
엄마는 방송통신대학이 무슨 학교인지도 모르고 한 말씀이었어도 그때 받은 상처는 다시는
엄마를 쳐다도 안보고 싶었다.
퇴근하고 오신 아버지께는 합격했다는 말도 못했다.

며칠 후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오셔서 내게 그러셨다.
"우리 작은 딸, 대학이 그리 가고 싶었느냐? 미안하다. 그 학교는 너 혼자 해 낼 수 있지?"
하시며 "직장 다니며 공부할 수 있겠니? 아무튼, 열심히 해 봐라"
"알았어, 도움 달란 말 절대 안 할게!"
그렇게 들어간 학교였는데. 3학년 1학기에서 휴학을 했다.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3학기 이전에 재등록을 하면 되니까. 꼭 다시 복학하리라
다짐을 하며..

그런데 다시 복학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으나. 지금의 형편도 그때와 별다르지 않아
내 자식 키우기도 바쁜 지금 내가 공부를 하겠다고 나설 처지는 아니고 참 씁쓸한 추억이다.
그래도 아직도 글을 쓴답시고 긁적이고 있으니, 나는 영원히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