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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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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에 물린 이야기


BY 낸시 2005-01-01

난 그닥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다.

귀신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거리기도 하지만 생각을 고쳐 먹으면 무서운 마음이 이내 사라진다.

비록 작고 힘이 약한 여자이나 귀신 따위가 감히 날 어쩌랴, 생각하고 산다.

어렸을 적 뱀을 산 채로 잡아서 작대기에 매달아 나를 놀려 주려던 사내녀석들이 오히려 놀란 적도 있다.

갑자기 내 눈 앞에 작대기에 매달린 뱀을 들이대어도 나는 태연했다.

그런 나를 보고 지네들끼리 고개를 흔들고 혀를 내두르며 놀라워 하였다.

물론 나도 뱀이 징그럽고 싫지만 남 앞에서 비명를 지르고 놀랄 만큼은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어머니는 노냥 그랬지만 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밤 늦게 시내버스에서 내려 인적없는 마을 앞 냇가를 지날 때면 주먹만한 돌을 집어 양손에 쥐었다.

혹시라도 나쁜 놈이 나타나면 기회를 봐서 먼저 공격하고 달아 날 생각이었다.

달음질에는 꽤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권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근무하던 학교 교장과 교감은 내 눈치를 슬슬보기도 하였다.

겁 없이 입 바른 소리도 잘 했고, 권위로 누르려 하여도 모든 것 다 버릴 각오를 하고 덤비는 내게 당할 재주가 없었다.

성깔 사납기로 동네에 소문 난 작은아버지도 내게는 솜사탕 같았다.

예의, 염치, 체면, 이런 것 버리고 덤비는 조카딸을 아무리 성깔 있는 작은아버지라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딸의 버릇을 가르쳐 보려던 아버지도 결국은 눈물을 흘리며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말했었다.

"나도 대단한 고집이고 성깔이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너에게는 두 손 들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할테니 제발 동생하고 그만 싸워라."

늦동이, 외동아들인 남동생을 나보다 더 이뻐한다고 사사건건 따지며 동생을 못 살게 굴었던 것이다.

이런 내게도 천적이 있다.

가슴이 오그라들며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 있다.

무섭고, 싫다고, 악! 소리를 지르며 움추려들게 하는 것이 있다.

 

초겨울이었을 것이다.

내 나이는 네 살, 아니면 다섯 살 쯤으로 기억된다.

햇살이 따스하던 어느 날 오후, 세 살 위인 언니와 대문 밖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큼직큼직 동글동글한 돌과 작두로 숭덩숭덩 짚을 썰어 넣은 황토흙을 켜켜이 쌓아 만든 담벼락 밑에 우리는 살림을 차렸다.

언니는 사금팔이로 그릇을 삼고, 흙으로 떡도 빚고, 어머니 몰래 훔쳐 낸 곡식으로 이런 저런 반찬도 만들어 밥상을 처렸다.

언니의 밥상을 차려내는 솜씨에 감탄하며 정신없이 소꿉놀이에 빠져있을 때였다.

밥상을 차리던 언니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뒷걸음치며 소리쳤다.

"쥐다!'

언니와 마주보고 앉아 있던 내겐 쥐가 보이지 않았다.

않은 채로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어디?..., 어디?..."

"저기..."

언니가 내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아아~악!, ..."

나는 벌떡 일어나 어쩔 줄 모르고 팔딱팔딱 뛰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때 유행이던 멜빵치마를 입고  앉아서 두리번거리던 내 치마속으로 쥐가 들어가  등을 타고 오른 것이다.

빠져나갈 길을 못 찾은 쥐는 옷 속에서 이리저리 헤메고 다녔다.

당황한 쥐의 움직임에 비례해서 무서움도 더했다.

그 만큼 비명소리도 커지고 자즈러졌다.

비명소리에 이웃집에 마실 갔던 아버지가 놀라서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달려왔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쥐를 움켜쥐었다.

비명소리에 놀란 쥐가 이미  오른쪽 어깨쭉지를 물어 깊은 상처를 낸 후였다.

쥐가 또 다른 곳을 물어 상처를 낼까봐 아버지는 쥐의 머리를 이빨로 물어 죽였다.

 

쥐에 물린 자리가 덧이 나서 몇 달을 고생했다.

오른 손으로는 물건을 집지도 못할 만큼 팔이 부어 올랐다.

그 보다는 쥐가 등에서 이리저리 헤메며 돌아다닐 동안 느꼈던 공포의 후유증이 더 오래갔다.

사 십 년도 훨씬 전 옛날이야기지만 지금도 쥐 생각만 하면 소름이 돋는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지만 쥐만 보면 몸이 얼어 붙어 꼼짝을 못한다.

울언니 둘은 나와 달리 겁이 많은 사람들이다.

나는 그 언니들을 겁쟁이라고  은근히 바보 취급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언니들이 나를 겁쟁이라고 마음껏 비웃을 때가 바로 쥐가 나타났을 때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몸서리를 친다.

가슴에 섬찟함도 동시에 느낀다.

'아~!, 징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