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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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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힘들다고 느낄때 ...


BY 눈꽃 2004-12-14

사람들에게 가장 아픈 추억이 한가지씩 가슴에 묻어 두었다고 합니다.

다들 자기의 아픔이 가장 아프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픔의 정도나 누가 그 상처가 더 아프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 이런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마냥 들때가 있습니다.

이게 내 일이 아니길....아니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으면 좋았을텐데

왜???하필 나일까???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운명이 그것밖에 되지 않은데...어차피 정해져 있었던 걸....

이런식으로 당연히 일어나야 했던 일처럼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게 나한텐 평생 해당이 되지 않을 것처럼....

 

너무 서론이 길었네요...

전 집안의 반대로 가출까지 했다가 겨우 겨우

10전에 결혼해서 두 아이를 가진 사람입니다.

첨 결혼하고 남편은 너무나 잘해 주어 동네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날 정도로 저를 아끼고 아이들도

너무나 사랑해 주었던 사람입니다.

결혼한다고 처음 반대했던 부모님도 잘 사는 모습에

미안하다고 괜한 걱정했다고...사위가 처가집 가면

이것저것 음식도 해주시고 처가집 일이라면 말도 안해도

척척 잘해서 부모님도 든든하게 아들처럼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희 부부를 하늘이 시기한 것일까요?

결혼하고 둘째 아이가 백일도 되기전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의식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때 흘렸던 눈물은 아마 제가 평생 흘려야 했던 눈물일 정도로....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이였습니다.

일년넘게 병원에 있으면서 백일동안 새벽에 나가서 기도하고

밤낮으로 성경책을 끼고 살았고 그렇게 밥은 먹지 못해도

꼭 기도하면서 눈물로 살려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기에 결혼하고 더욱더 열심히

믿음 생활로 교회 활동도 하고요 그렇게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삼년넘게 지나니까 저도 서서히 지치게 되고 아이들도

엄마, 아빠 없는 품을 그리워해서 병이 나서 결국 간병인을 두고

전 아이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좋은 무당을 찾아가서 굿을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에

많은 돈을 들여서 시댁 식구들 몰래 어디 산속에 들어가서

몰래 굿도 해보구 여러가지 방법을 써 봤지만 그 사람의 의식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댁쪽에선 교통사고 보상금때문에 자꾸 저를

의심하고 구박해서 결국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와서

밤엔 병원에서 낮엔 아이들과 생활하는 이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땐 밤마다 보조의자에 누워서 제 말도 듣지 못하는 남편에게

신세한탄만 했습니다.

왜 하필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냐고 하나님께도

많은 원망을 했으며, 그때 부모님 반대할 때 결혼하지

말것을 하는 후회도 했습니다.

울고 또 울고 ...사람들 많은 곳도 피하고 혼자 있는 공간에서

또 울고...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젠 7년이 넘었습니다.

이젠 제 아이들과 저 그렇게 행복하게 남편의 빈자리를

비워두고 살고 있습니다.

큰아이가 조금씩 커서 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빠의 자리보다

엄마라는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으며

왜 우린 아빠가 없냐는 작은 아이에게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아빠가 없는 이유를 웃으면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어려움이 닥쳐도 설마 그때 지옥같은

시간보단 행복하다고 우리에게 더 큰 시련이 와도

우린 견뎌 낼수도 있다고 우리 세식구는 화이팅 하면서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걸 다시 한번 되새기며

서로 안아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