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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코알라 살처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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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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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BY 예운 2004-12-14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하얀색 구절초, 갯벌에는 함초와 나문재, 진분홍빛 칠면조가 바다단풍 군락을 이루고 가을소금 영글어 하얗게 펼쳐져 진풍경을 만들어 낸 자연 앞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감나무에 주홍빛으로 익은 감들이 가을하늘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화를 만들어 놓았다.

어쩌면 드높고 청명한 가을하늘과 저리도 잘 어울리는지.

제 계절에 어울리는 열매가 어찌 감뿐이겠는가.

이른봄 눈속에서도 어김없이 피어나는 매화꽃이 지고나면 초록색으로 열리는 청매실은 사람에게 주는 유용한 아미그달린, 청산,같은 성분이 있어 복통이나 설사에 효험이 있다하여 가정에서 상비약으로 갈무리하도록 한다.

연둣빛 청미래 넝쿨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웃자라 청미래가 콩알만하게 달리고 여름이면 작은 진주알만하게 탱글탱글해져서 가을엔 빨갛게 익고 겨울로 가면서 딱딱하고 쭈글쭈글한 껍질속에서 말라가는 속이 어쩌면 사람의 일생과 그리도 닮았는지. 그래서일까 사람이 늙어 죽을때가 되면 맹감(청미래의 방언)따러 갈때가 되었다고 한다.

막 달린 청미래 열매를 씹으면 미끈거리며 시큼한 맛이 난다. 여름에는 톡 터지는 소리가 경쾌하고 미끈거리는 맛이 없어진 새콤한 맛이, 가을에는 그기에 달큰한 맛이 더해지고 겨울에는 달큰한 맛에 떱덜한 뒷맛이 느껴진다.

지금 나는 청미래의 여름쯤 되었을까?

청미래가 새순을 돋아낼때 쯤이면 찔레순도 쫑긋쫑긋 돋아난다.

어렸을때 찔레순 껍질을 벗겨서 아삭아삭 씹어먹었던 생각이 나면 코끝이 찡해져 온다.

옹골옹골 모여 하얗게 핀 찔레꽃 향기가 아찔하고, 그 뒤에 키다리 아저씨처럼 우뚝 선 아카시아나무에 피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들에 달려들던 벌떼들의 아우성.

친구들과 가위바위로 아카시아 이파리 한잎씩 따는 내기를 하고, 이파리를 훑어 낸 대궁이 반으로 접어 머리에 감아 파마를 해대며 십리 황톳길을 다녔던 초등학생이 지금은 마흔을 바라보는 엄마, 그리고 아줌마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사람 일생을 닮은 청미래, 청미래 닮은 찔레의 빨간 열매맛은 또 어떤가.

달달하고 매콤한 그 맛까지 우리들의 유일한 간식꺼리여서 까치밥까지 먹어치웠었다.

우리가 산야를 쏘다니며 따 먹었던 수많은 꽃과 열매들. 진달래, 산복숭아, 머루, 파리똥(보리수열매), 오디, 산벗찌, 다래, 으름, 칡, 그 중에서 다래와 으름의 맛은 지금 그 무엇에서 그맛이 나며 그토록 진미를 낼수 있을까.

다래순에 가늘고 날씬한 초록색 자벌레가 등을 양껏 굽혔다 펴며 기어가는 징글맞음으로 버텨도 다래의 달콤한 맛으로 인해 제먹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자벌레가 버티고 있는 다래순을 훑어내고 줄기를 힘껏 잡아 당겨 채 익지도 않은 열매까지 모조리 따서 주머니 마다 채우고 옷으로 앞치마까지 만들어서 담아와 쌀겨 속에 묻어놓고 익지도 않은 다래를 검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아랫목에 겨울이불로 덮어 억지로 익힌 다래의 시금털털한 맛까지. 그런 맛일지 뻔히 알면서 매번 반복되는 그 짓거리는 커는 내내 이어졌다. 그때는 으름잎이 다섯 개인지도 몰랐고 달빛에 비친 으름덩굴잎이 아름다워 월야미인이라 불리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줄기가 통초고 열매가 목통이란 이름으로 한약재로 쓰이는줄은 더더욱 몰랐었다. 어떤 열매가 어디에 좋고 어떤 효능이 있어 무슨 증상의 몸에 어떻게 쓰이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먹었던 꽃과 열매들이 내 몸을 이롭게하고 성장을 도왔다는 걸 안지도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꽃차가 좋아서 들꽃을 따다 말리면서, 산야초차에 관심있어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시골에서 그렇게 자란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지금 산야초차를 연구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말하는 백초차를 나는 이미 오래전에 맛본 셈이다. 온갖 산야초를 덖어 섞기도 하고 산야초와 열매들을 섞어 발효시키기도 해서 만든 백초차는 말 그대로 백가지를 섞어서 만든차라는 뜻이다. 

온 산야가 큰 슈퍼마켓이었고 내 손과 발의 노동으로 금전적인 지출없이도 음식들을 마음껏, 양껏, 손크기만큼 집어 먹을수 있었던 유년시절의 풍성함이 있어 좀은 인색하다 싶을만큼 아끼며 살아야하는 지금의 삶에도 견뎌 나갈수 있는 지혜가 생기지 않았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게된다.

궁색하기만 했던 유년도 자연과 더불어 생각하면 풍족하게 느껴지는 생각의 차이가 사람을

 불행하게하고 더 행복하게도 한다는걸 지금에라도 깨달을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지금 내 아이들에게 다래를 대신한 양다래와 으름을 대신한 바나나를 양껏 사주면 훗날 지금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늦가을 남쪽 섬은 아직 따지 않은 감이 나무에 달려있고 제대로 가꾸어지지 않은 탱자같은 유자가 노랗게 달려있다.

배고픔이 아니라도 제값을 받을수 있었다면 지금쯤 빈 유자나무들로 꽉 찰 섬이지만 주인잃은 유자나무가 이제는 짐이 되어버렸다.

제 값을 받지 못해 천덕꾸러기가 된 농산물이 유자만은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엇갈림으로 지금 김장 무우밭이 설렁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상황들에도 갈아 엎고 또 씨앗을 들이니 땅을 가진 사람들은 무던도하다.

땅에서 나는 모든 농산물들이 제값 받을수 있는날이 언제나 올는지.

농민 스스로도 과유불급의 이치 살필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정부에게 제도적 장치를 요구해서 땀흘려 가꾼 수확물이 셈과 어울려 가을하늘에 어울리는 감처럼 보기좋을 그날의 풍경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