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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동서와의 갈등>


BY 도영 2004-12-03

시련에 부딪친적이 있었나요?
시련에 부딪친 흔적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그랬군요..그런데 그렇게 밝을수가 있나요?
나를 아는 사람들이 처음 나를 보았을대 의외라는듯이
마치 내가 뻥튀기듯 튀긴것처럼 ...인정 하려 않는 눈치가 역력 하다
다들 시련이야 왜 없었겠는가
암울한 60년대 태어난 이들은 혜택 받은 소수를 제외 하고는
크고 작은 시련들을 겪으며 사십대 중년 들이 된것을..


시집살이라는 시련도 세월이 흐르니
자연스레 점차적으로 강도가 약해져가고
남편과의 서너번 찾아왔던 권태기도 시련 이라면 시련 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상처로 남는 시련이 가장 큰 시련이 아닐까.
시어른들이 내게 시련을 주었어도
그건 부모가 자식을 나무라는거니 순간 순간 힘들어 상처는 되었겠지만
두고두고 상처가 되어 한으로 까지 남지 않을뿐더러..
남편과의 시련도 갈라서지 않고 살다보니 그것은 한때의 다툼 이였노라
그것은 순간 코드가 맞지 않어 생긴 잡음이라고 생각을 하지
대표적으로 내 결혼 생활에 시련기는 아니였다


내게 커다란 시련은 또 다른 색깔의 동서와의 신경전 이였다.
내게는 동서가 셋 있는데  그중 첫동서에게  마음을 많이 주었다.
물론 둘째나 막내동서도 귀히 여겼지만
내가 삶의 고단함이 절정에 달했을때 들어온 첫번째 동서는
내게 있어 친동생이나 마찬 가지였다.
그 동서 역시도 비록 형님이라고 한살차이라지만 언니처럼 나를 의지했었고
아래 두동서가 더 들었왔어도 우리둘은 보이지 않은 믿음이 형성 되어있었다.

그러다 내 친정 엄마가 돌아가셔서 삼오 지내고 온날이
단 한번도 빠져본적 없는 시댁 제사가 들은 날이였다
내 엄마를 잃은 슬픔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 된채 침대에 너브러져 있는데 어머니의 퉁퉁 불은 시딱한 한통의 전화가 오후에 걸려 왔다

""오늘  제산 안오나?""

 내게 어느누구도 상 당해서 힘들테니 빈말이라도 이번 제사는 빠지라는 배려는 커녕
시동생들의 조문도 없었는데다가 이웃들도 챙겨주는 조의금을
가장 가까운 부모 맞잡이인 내게 표현 못하는 동서들에게 많이도 서운 했다

평소 친정쪽에 ""우리는 시동생이나 동서들하고 사이가 너무 좋아요 '"
자랑을 했는데 내 자랑이 뻥이 였다고 판단 내려질까
그렇치 않으면 저것이 시댁에 얼마나 인심을 잃었으면
셋이나 되는 시동생들이 코빼기도 안보이냐 오해 할까봐 우려도 되었다
그서운함이 평상시에 정을 쏟은 손아래 동서가 내 타켓이 되었고

""아...동서는 역시 남이야...내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차라리 별난 시부모님이 그래도 나아...내가 그동안 너무 만만하게 해서 나를 우습게 본거야 ..나 이제 깐깐하게 살거야""
나는 동서들에게 대하는 방식을 수정을 하게 되었다

내 어머니의 죽음은 나는 동서가 아닌 동생 처럼 대하던 그녀에게
마음의 빗장을 닫아 거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오손도손 잘지내던 둘사이는 나의 냉램함에 멀어져갔다.
지금 생각 하니 사소한 일일있수도 있는 문제인데
당시 나는 왜그리 그녀에게 서운했던지 아마도 보상심리가 작용 한것은 아닐까.

입 꼭다문채 눈내리깔고 신경전을 벌이다 보니 마음은 지옥 이였다
동서 역시도 시댁에 행사가 있어 나와 마추치면
시선을 어데다 둬야할지 몸둘바를 몰라하다
희껍을 하고 쎄빠지게 시댁을 허둥지둥 빠져나갔는데..아마도 동서 역시도
맏동서와의 신경전이 마음이 괴로웠는지 어느날 전화가 왔었다.
한통의 전화로 표면적으로는 풀어지는듯 했지만 .
그다음부터는 동서의 행동이 곱게 보이지 않았고
그런 내게 동서 또한 그전에 나를 믿고 따르던 동서가 아니였다.
변한 나를 보며 변한 동서를 보고 오는 날에는
그날 기분이 늪속에 아주 천천히 가라 앉는 ..
뭐라 형언 할수 없는조절 할수 없는 감정에 사로 잡혔다

그렇게 금이간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가슴이 시려 몇날며칠 잠을 잘수가 없었는데
시부모님의 억압과 남편과의 갈등과는 전혀 다른 색깔이였다
잘지내던 인연과 멀어진다는것은 내 정신 세계를 거무틱틱 하게 만들었고 끈적 거리게 만들었고 똥 구덩이에 빠진듯 몹시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손아래 동서를 시댁에서 마추쳐야 하는 심정은 그야말로 정신적인 시련 이였다.
동서 역시도 맏동서의 매운맛에 매워 재채기를 하는듯 표정이 일그러졌고
나역시도 주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동서와의 신경전에
위장의 팽만감과 심장의 답답함으로 예전 잘지내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싸움도 계기가 있어하고 화해도 계기가 있어야 하고
그 모든 인간사가 계기가 있어 연결되고 혹은 그 반대 이듯이
아들의 군입대 문제로 동서가 화해의 계기를 만들었다.
아마 동서는 장조카의 입대를 절호의 기회로 잡아 만회 하려 했는지
잔정 없고 표현 못하는 곰과인 평소 동서와는 달리 다른 모습을 보여 주려 애썼다.
식구들을 불러모아 장조카의 군입대를 서운해하며
밥을 사네.. 아들에게 용돈을 주네 ...정을 쏟는 거였다.
애쓰는 그모습을 바라보니 어느새 나는 2년여 채웠던 마음의 빗장이 움직여졌다

밥을 사주어서도 아니고 아들에게 용돈을 주어서도 아니다.
그 잔정 업고 무뚝뚝한 동서가 노력 하는 모습에
""애휴..나만 지옥이 아니였나보네 ...""중얼 거리며
그녀에게 술을 한잔 건네며 그동안 회피 했던 동서에 눈을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신혼여행 갔다온 첫날 알록달록 한복 입은 고운 모습이 아닌
세월에 흔적이 역력한 그녀의 넓어진 모공이 내눈안에 들어왔다.

그날 이후.
나나 동서는가끔씩 통화를 해도 마음속에 우러나오는
압력솥에 찰밥 한듯 찐득찐득한 정이 전화선을 타고 느껴지는데..
나와 그녀는 2년여의 정신적인 갈등과 시련이
이제는 그어떤 오해도 서운함이 생겨도 쉽게 금이 가지 않은 면역이 생긴것 같다.
갈등과 시련기에 두여자는 친구 같던 옛시절에 평화에 목마름을 알기에 ..
동서사이의 보이지 않은 대립은 ..
손윗동서인 내 체면이 깍이는 일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 동서에게는 표현의 미덕과 중요함을 일깨어준 2년여의 시련 이였을것이다.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