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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6 - 남자는 가슴으로 운다


BY 인 연 2004-11-30

 
에피소드 6 - 남자는 가슴으로 운다

12월이 코앞인데 거리곳곳에는 아직도 가을의 잔해들이 추억처럼 꿈틀거리고
팔랑개비처럼 추락하는 낙엽들이 낙화암 삼천궁녀의 전설을 떠오르게 한다. 
며칠동안 하늘은 거울처럼 투명하더니 주말에는 안개비가 종일 명주솜이불을 
덮듯이 내렸다.
안개 자욱한 거리의 불빛들은 사냥감은 놓쳐 버린 들짐승의 눈처럼 흔들렸고 
하얀 천을 씌운 듯한 신호등 앞에서는 자동차들도 엉거주춤 멈추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자라처럼 목을 빼고 전방을 살펴보았다.
길이 왠지 낯설었다. 족히 한 두 블록을 지나쳐버린 게 분명했다. 
 
"지나쳤잖아요. 아직도 감이 안 와요?"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여자의 말투 속에 잔뜩 짜증이 실려 있었다.  
가뜩이나 화가 치미는데 빈정대는 여자를 보니 복장腹臟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무생물인 스프링도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크게 튀기는 법인이 하물며 감정이 
있는 사람이 무시당하고 억눌리면 분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길이 잘 안보이잖아, 그렇게 잘 알면 당신이 운전을 하던지!"
"어머머, 왜 신경질을 부리고 그러세요?"
"싫으면 내가 운전할 때는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어!"

나보다 일 년 먼저 왔다고 텃세를 부리려다 큰소리에 기가 죽은 것일까?
핏대를 세우던 여자는 잠시 잠잠해졌다.

낯선 도로에서 운전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났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아직도 
온갖 말초신경들은 선잠을 깬 아이처럼 곤두서 있다. 
어쩌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머리꼭대기에서 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손바닥에서는 찌걱찌걱 땀까지 배어 나왔다. 
나는 용감하게도 미국에 도착한 당일, 운전대를 잡았다. 
마중 나온 형님께서 건네 준 자동차 키를 어떨 결에 받아 들고 두려웠지만 
운전을 하다보니 한편으로는 자신이 대견했고 투명한 날씨 덕분에 기분도 
상쾌했었다. 
첫날에는 집과 교회, 둘째 날은 집과 슈퍼마켓, 셋째 날에는 집과 친척집을 
오가며 조금씩 도로를 익혀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동선動線이 길어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이 이 길 같아 가뜩이나 헛갈리는데 표지판까지 
온통 영어라서 한 번 갔던 길을 숙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거기다 교차로마다 정지 표지판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아서 몸에 밴 
운전습관을 답습했다가 하루에 몇 차례의 벌금딱지를 받아도 부족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목적지까지 돌고 돌아가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하지만 첩로捷路를 
찾는 날이면 운수가 대통한 날이다.
요즘도 가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 소경처럼 길의 장벽에 부딪쳐 곤란을 
격지만 스트레스의 시발점은 옆에 앉아서 은인자중隱忍自重하지 않고 떠드는 
여자 때문이다. 
여자가 가장 꼴 보기 싫을 때는 언제인가? 이런 설문을 지금 받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나의 운전실력을 과소 평가하거나 길눈이 어둡다며 불평하고 
빈정댈 때라고 대답할 것이다.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낯선 길보다 정작 
여자가 더 얄밉다.

이국에 살다 보면 길의 장벽뿐만 아니라 유형, 무형의 많은 장벽을 만나게 
되는데 이 중에서 가장 강력한 대표선수는 언어장벽이다.
언어장벽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철옹성이다.
언어장벽은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를 이해하고 주류主流로 
진입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작지만 조석으로 부딪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나에게는 스트레스다. 
다양한 인사말을 구사하며 반갑게,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데 기껏해야 
헬로, 굿모닝 등 식상한 인사 밖에 못한다.
하루는 속이 상해서 밤새 회화책을 뒤져 좀더 다양한 인사법을 암기하고 아침을 
맞이했는데 잘못된 발음 때문인지 인사를 받는 당사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영어가 주인을 잘못 만나 밤새도록 헛고생 한 것이다. 
인사는 결국 굿모닝이란 짧은 단어로 싱겁게 끝나 버렸고 순간의 쪽팔림에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눈을 뜨고 감아도 갈 길이 구만리 같은 이민생활인데 귀머거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이라는 시집살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월말이 가까워진다. 바야흐로 우편함에는 각종 메일들이 당도할 것이다.
전기, 전화, 가스회사, 인터넷, 케이블방송 등에서 보내 온 메일들을 보는 순간
거미줄 같은 언어장벽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뒤져서라도 밑줄까지 그으며 숙지하고 청구서는 꼼꼼히 
검토한 후 고지된 금액만큼 체크를 끊어서 회사에 메일을 되돌려 보내야 한다.
은행거래 절차도 몹시 번거롭다.
계좌를 하나 만드는데 준비하는 서류도 많지만 시간도 만만치 않게 허비한다. 
그렇다고 고국과 달리 전자칩이 들어있는 통장을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면서
사람을 한참이나 기다리게 하다 손에 쥐어 주는 것은 달랑 카드 한 장뿐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적잖이 불편하고 당혹스러웠다.
고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불편함이지만 이 곳 사람들은 이러한 일에 익숙해져 
있으며 때로는 불편함도 즐기는 듯 여유가 넘친다.  
세계제일의 문명국가이며 정보기술이 첨단을 달린다는 미국이지만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첨단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시스템이 더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며 더러는 사람과 종이의 향기를 맡기도 한다.

어제는 에디슨을 다녀왔다. 
돌이켜 보니 여자와 동행하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다.
에디슨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40분 정도를 자동차로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지역인데 최근 들어 한국교민들의 이주가 늘어나고 있는 곳이다.
초행길이라 며칠 전부터 주위 분들께 가는 길을 묻고 지도까지 챙겨 출발하였으나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에디슨에 잘 도착하였고 그 곳에 거주하는 교민의 
안내를 받아 별다른 불편 없이 지역을 탐방할 수 있었다. 
탐방이 끝날 무렵 붉은 노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지만 집으로 되돌아 갈 일을 
생각하니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때문에 교민의 친절한 안내를 받았지만 땅거미 내려앉은 낯선 길을 혼자 찾아가며 
운전을 하려니 등골에서 진땀이 배어 나왔고 대낮에는 잘 보이던 이정표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차를 멈추고 길을 물을 만한 사람도 없었다. 
어쩔 수없이 어둠에 가려진 에디슨지역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한참동안 돌고 
또 돌았다. 
안내를 도왔던 분이 노파심에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길을 안내해 주었지만 이미 
방향 감각을 상실해 버린 나로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전화벨소리조차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와중에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은 다 끝났느냐, 언제 오느냐. 물었다.

"이제 다 끝났어, 곧 올라 갈거야." 

분위기 파악 못하고 전화를 한 여자를 생각하니 짜증부터 났지만 차마 길을 
헤매고 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사실대로 고백하면 여자에게서 핀잔 아니면 빈정거림을 들을지도 모른다. 
해서 목소리를 바리톤에 맞추고 가능한 점잖게 답변을 하였으나 처지는 가야할 
길은 먼데 해가 떨어져 오도가도 못하는 나그네와 다를 바 없었다.
집으로 가려면 맨 먼저 287도로 south 게이트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이정표가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술래잡기를 얼마나 하였을까? 커브를 도는 순간 287도로 south라는 이정표가 
헤드라이트 불빛에 진주처럼 빛났다. 구세주가 이보다 반가울까. 

게이트를 통과하는데 지옥에서 머물다 천국으로 가는 것 같았다.
287도로에서 95번 하이웨이로 진입한 나는 경쾌한 마음으로 속도를 높였다.
평소 같으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꼬리에 꼬리를 문 자동차의 불빛들이 아름다웠다.
이후 40분 동안은 희희낙락喜喜樂樂이었다. 긴장도 풀렸다.
그런데 그만, 방심한 탓일까. 집이 가까워지면서 게이트를 잘못 빠져 나와 버렸다.
이런, U turn을 할 수도 없다. 다시 지옥으로 곤두박질한 느낌이었다. 
미국의 도로표지판에는 U turn이라는 단어가 없다. 
길을 잘못 들면 가까운 우측게이트를 통하여 되돌아 것이 상책이지만 그 길도 
초행길이면 만만치 않는 어려움이 따른다. 
설상가상, 링컨터널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들었던 링컨터널이었다. 등에서 또 다시 땀이 배어 나왔다.
링컨터널은 허드슨강을 가로질러 뉴저지와 뉴욕 맨하탄을 연결하는 터널인데 
교통체증이 심한 곳으로 그 명성이 링컨보다 자자한 곳이다.
명성에 걸맞게 각종 회사의 대형광고판이 밀집되어 있고 터널 한번 통과하는데
지불해야 할 비용이 무려 6달러나 된다.
이쯤 되면 하늘이 노랗게 보여야 하는데 톨게이트 불빛이 노랗게 빛났다.
몇 번이나 불법 U turn을 시도하고 싶었으나 배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뉴욕까지 갔는데 눈치 없는 여자에게서 
또 다시 전화가 왔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때로는 본질을 호도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점잖은 목소리로 집 근처까지 왔다고 내숭을 떨어야 했다.

길의 장벽,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이러한 고통은 계속될 것 같다.
때문에 고국에서는 내가 낯설어 영어가 고생하더니 여기서는 영어가 낯설어 내가 
고생이다.
집에 도착해서도 6달러를 날린 아쉬움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화를 삭혀야 
했다.
남자는 가슴으로 운다더니 정말 가슴으로 울었다.
다시 시작한 헬스의 후유증도 아닐 텐데 오늘까지 가슴이 아프다. 
6달러의 아픔이 왜 이다지도 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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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포트리에서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