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를 가졌을때 입덧이 심했습니다.
쌀내음새도 맡지 못하고, 부엌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습니다.
식탁에 있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해 헛구역질만 하던 그 시절...
암으로 투병중이셨던 시어머님께서는 입덧이 심한 며느리 밥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어떤 날에는 계란찜을 해서 올려 주셨는데...
계란찜 냄새가 싫었던지 헛구역질을 하는 제 모습을 보며 말씀 하셨지요
“ 어떤 귀한 인물이 나오려고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노? 이놈! ”
그리곤 다시 밥상을 차려 주셨습니다.
김을 참기름 발라서 소금 뿌려 바삭하게 구어 주신 날도 있었고,
누릉지를 끓여서 누릉지탕을 만들어 “ 아가... 새아가... 한술 뜨렴..
입덧은 병이 아닌기라... 먹어야 이기재...”
하지만 저는 한술도 뜨지 못했습니다.
유난스런 입덧이 더 심해지던 어느날...
어머님께서는 시장에 가서 콩고물을 사 오셨습니다.
콩고물에 참기름 조금 넣고 밥을 비벼 주시면서 말씀 하셨지요.
“ 먹어보그래이. 내도 니처럼 그랬다 아이가?
니 남편 가졌을때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
그때 시어머님께서 콩고물에 밥을 비벼 주셨단다.
콩고물 내음새가 얼마나 좋던지... 허겁지겁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 밥을 몇공기를 비워 버렸지... 그걸 먹고는 입덧이 사라진기라.”
콩고물에 비빈 밥을 입에 넣는데 목이 메였습니다.
“ 아가 먼저 물부터 마셔야재... 채하면 어쩌려고...?
임산부는 체하면 약도 없는기라...”
어머님이 따라 주시는 미지근한 보리차로 입을 헹구고
콩고물에 비빈 밥을 먹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입덧은 하지 않고 한그릇을 뚝딱 비웠습니다.
맛있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 가는데...
세상에 이런 맛있는 음식이 있었나... 싶더라니까요.
단지 콩고물에 참기름 한방울... 밥 비빈건데 왜 이리 맛있던지...
그후 잃어버린 입맛을 찼았고, 다른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암으로 오랜시간 투병생활을 하셨던 시어머님!
아프신 몸으로 며느리 입덧을 위해 만들어 주신 정성스런 음식들...
하지만 저는 아프신 시어머님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독한 암덩어리와 복수 때문에 한끼 식사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셨지요. 제가 만든 죽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올리신적도 많았구요.
행여나 제가 상처를 받을까봐 “ 아가 맛있었데. 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많이 못 먹었구만... 다 내가 아픈 탓인기라...” 자책하시면서 저에게 맛있다... 잘 끓였다... 칭찬만 해 주셨지요.
어머님의 독한 암 때문에 식이요법을 하셨습니다.
고기, 생선은 드실수 없었고,
싱거운 나물만 겨우 한젓가락씩 드셨지요.
무나물과 겨울초나물만 드시다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늘 마음이 아픕니다. 밥을 먹을때마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만들어 드리지 못해서... 목이 메입니다.
제대로 된 밥상 며느리가 차려 주는 따뜻한 밥 한공기만 드시고 세상을 떠나셨더라면 이렇게 서운하지는 않았을것을...
못난 며느리 입덧 때문에 당신께서 아프시면서도 아무 내색 없이 며느리 밥상을 손수 지어 주시던 어머님의 사랑...
갚을 수 없는 어머님의 마음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렇게 허망하게 가실줄이야...?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한 일은 어머님과 이별후 어머님의 제사상을 차린것이 처음으로 만든 따뜻한 음식이었습니다.
살아 생전 단술을 좋아하셨다는 말슴에 정성껏 식혜를 다리면서 이걸 맛있게 드셨을 어머님 생각에... “ 아가... 맛있다... 단술 맛이 좋네... 우리 아가... 예쁜 아가 !” 어머님 생각에 목이 메입니다.
어머님 첫제사때 어머님 영정 사진을 닦고, 또 닦으면서 어머님이 그리워 눈물이 났습니다.
첫아이를 업고 어머님께 절을 올리면서 고맙다고...감사하다고... 어머님의 마음처럼 첫손주 바르게 잘 키우겠다고...
오늘은 맛있는 음식 많이 드셨으면 참 좋겠다고....
살아생전 즐겨 잡수셨다는 식혜.... 제가 직접 담근것이라고... 맛 좀 봐 주시라고...“ 절을 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는데...
못난 며느리, 철없는 며느리였기에 어머님이 더 그립습니다.
어머님께 못다한 효 아버지 정성껏 모시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효도 하며 살겠습니다.
오늘따라 어머님이 더 그립습니다.
평생 우리곁에 계실줄 알았습니다.
철없는 맏며느리 야단치며 그렇게 오래 계셔주실줄 알았습니다.
며느리가 만든 따뜻한 밥한공기 제대로 잡수시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실줄 미리 알았더라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딸과 어머니가 될 수 있었을텐데...
몹내 아쉬워 뒤늦은 후회 를 하면서도 늘 곁에 있는 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 바르게 키워 준 시어머님이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