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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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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BY 雪里 2004-11-08

아침에 일어 나자마자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거창하게 만들어진 돌아궁이위에 놓인 솥뚜껑을 여니

엊저녁에 콩을 씻어서 넣고 콩위로 한참 올라오도록 흥건하게 부었던 물이 하나도 없다.

 

"아니~! 그많은 물을 콩이 다 먹어 버린건가? 콩이 덜 불었으면 어쩌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손으로 콩을 뒤적거려 보니 바로 밑에 물이 만져 진다. 

다행이도 콩은 다 불릴만큼의 물은 되었었나 보다.

물을 더 퍼다 부으며 알맞은 물량을 몰라서 퍼냈다 더 부었다를 몇번씩이나 반복했다.

 

지난 추석때 산소에 왔다가 베어내어 주변으로 던져 버린 나무들이

뒷산에 즐비한걸 봐 뒀으니  땔감 염려는 없었다.

어제 그 나무들을 질질 끌어 내려다 놓고 남편에게 잘라 놓으라 했더니

알맞은 크기로 잘려 있다.

 

아궁이에 잎이 달린 나무를 꺾어 우겨 넣고 작업실 커다란 휴지통을 꺼내다가 연습지뭉치를 꺼내 불을 붙여 넣으니 따닥거리며 잘도 타는데다 가을 냄새까지 진동한다.

 

굵은 나무를 그위에 얼기설기 얹어 놓고 그사이 아침 식사를 할 계산인데

불이 살아나기는 커녕 마른잎이 타고 나니 점점 사그라진다.

이리뒤적 저리 뒤적거리며 종이를 넣다가 입으로 불다가.....

 

" 자고로 불이랑 마누라는 쑤석거리면 안된다는거 몰라?"

 

남편이 나오면서 눈물 콧물 범벅이된 내 얼굴을 보고는 웃으면서 한마디 한다.

 

"불때는게 쉽지 않네요, 자기가 불좀 때줘요,"

 

내가 먼저 해 보지 않았으면  불때는일쯤이야 했겠지만,

굵은나무를 양쪽으로 쫙 벌려 엇갈려 얹어 놓으며  불을 살려 내는 모습이

나에 비하면 남편은 불때는일에서만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아랫집 최화백님이  아침부터 뭘 거창하게 하기에 그리 연기를 피우냐며 올라 오셨다.

어른 되는 실습 중이라니 내 꼴을 보고 웃으신다.

 

김이 오르기 시작하는 솥 뚜껑을 열고 물의 양을 짐작해 보고 덮었다 다시 열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안으로 뛰어 들며 남편에게 신신 당부를 한다.

"잘 보며 불때요. 넘칠것 같으면 얼른 뚜껑을 열어야 해요."

 

"엄마, 메주 끓일때 불린 콩이면 물을 얼마만큼 잡아요? 지금 끓으려 하는데..."

 

" 뭐? 벌써 끓인다구? 나 데리러 온다며?  내가 가야 가르쳐 줄껀디..그나저나 끓으려 하믄 옆에서 지켜야지 넘치기 시작하믄 다 넘치는겨.... 밥물 만큼이면........빨리 가봐...."

 

전화 속에서 친정엄마는 염려 스러워서 애를 타고 계셨다.

 

쉰살이 넘은 딸이 처음으로 메주를 끓여 보겠다는 말에

농사 지은 콩을 깨끗하게 골라서 주시며 메주 쑤는날 꼭 데리러 오라는 당부를 하셨었다.

 

이만큼의 나이를 먹은 딸이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오래전의 엄마의 딸인채로만 있어서 

메주를 쑤겠다는게 신기하고 대견하지만 혹여 실패할세라 

옆에서 가르치시며 지켜 보고싶으셨던게다.

그새 당신은 팔십 노인이 되신것은 잊으신 채.

 

불길이 세어지면  솥뚜껑을 자주 들어서 뒤적여야 하고 

화력이 줄면 뒤적이는 횟수도 훨씬 줄었다. 

 

허리를  어정쩡하게 구부린채 뚜껑을 열고 닫고를 여러번 하면서

시원찮은 허리에 무리를 했는지 반듯하게 펼 수 가 없다.

또 마음으로만  자신있게 시작을 했던 것이다.

 

"콩 뜸들이는 동안 자기가 가서 엄마 모셔 와요."

 

이제 푹 무른 콩을 찧는 일만 남았다.

메주를 끓일때면 제일 힘드는 일이 메주 찧는 일이었다.

시어머님이 메주를 끓일때마다 아버님이 찧는일을 담당 하셨었는데

전엔 절구통에다 찧느라 더 힘들었지만 

근래 몇년동안은 메주 전용 장화를 사다 놓으시고  삶은 콩을 자루에 담아 밟으셨다고

가게에서 늦게 돌아 온 내게 보고(?)를 하곤 하셨었다.

 

그러나 이젠 찧는일은 전혀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제 작은 아들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이 있었는데  새롭게 메주 찧는 법을 배워온 것이다.

도깨비방망이를 이용해서 찧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삶은콩을 가는 것 일 것이다.

 

친정 엄마가 차에서 내리실때  나는,

잘 찧어진 콩을 상위에다 쏟으며  메주의 크기를 가늠하고 있을때 쯤이었다.

 

"좋은 세상이구나. 별스럽게 메주도 찧고... 콩도 잘 물렀구먼....."

 

상위에서 메주를 탁탁 두들겨서 만드시며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앞 들에서 얻어다 손질해 놓은 볏짚위에 메주를 가지런히 일곱개 만들어 놓고

뒷정리까지 하고 나니 오후 한시반이다.

 

반나절동안 메주를 다 쑤어서 만들었다는게 신기하다시며

육식을 즐기시는 친정엄마를 위해 아침에 미리 준비해 놓은 닭고기를 

어금니도 없는 시원찮은 치아로 맛있게도 잡수신다.

 

따뜻하게 욕조에 물을 받았다.

목욕비 아끼신다고 집에서 하시는 목욕인데 물인들 많이 데우실리 없어서

내게 오실때마다 목욕을 하고 가시게 하는데 그때마다 엄마의 등판은 자꾸 작아지더니

오늘은 어린아이 등을 미는듯하다.

 

매다는 법을 모르니 가르쳐주고 가신다며  

반나절 마른 메주를 짚으로 엮어 양쪽으로 걸쳐서 행거에 걸고는

짚을 뭉쳐서 사이에 끼워 놓으신다.

간단하지만 참 신기하게 보이는 삶의 지혜였다.

 

엊그제 담가서 엄마몫으로 덜어 놓은 갓김치도 챙기고, 달걀도 몇개 담고,

홍시 만드는 감도 몇십개 따로 싸서 차에 얹으며

어둠속으로 나가는 차에대고 소리쳤다.

 

"건넌방에다 쫙 펴놓구서 물러 지면 구준할때  갖다  잡숴요~

보일러 돌리고 주무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