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늘도 남편 혼자 점심 먹는날.
아침밥을 지으며 겹치기로 고구마를 씻어 들통에 넣고 찌는데,
푸짐스럽게 나오는 김이 온 집안을 고구마 냄새로 꽉 채우고는 모든 유리창을 뿌옇게 흐려 놓는다.
씽크대 앞 바닥에서 내 발에 끌려 다니던 마른 걸레를 집어 들고 커다란 앞 유리를 문지르며 나 혼자 내 행위에 웃고 만다.
"고구마 찌고 유리창 닦고~~ㅎㅎ 이런게 일거 양득이란거여~~ㅎㅎ!!"
닭모이를 주고 들어 오던 남편의 눈이 내게서 벗어 나질 못하고 쫓아 다니고 있다.
식전부터 왜 유리창을 닦느냐,
아침은 안줄거냐.
아침부터 웬 고구마를 쪄서 집안을 고구마 냄새로 진동 시키느냐,
그리고 누가 먹을건데 그리 많이 찌느냐?.......
내게 붙어 버린 그이의 눈이 그렇게 줄줄이 묻고 있는데
대답은 안하고 손놀림만 더 빨리하며 아침상을 차린다.
"아침 먹어요~! 웰빙 식탁 입니다. "
된서리 오기전에 따다 놓았던 호박잎과 어린 호박을 깨뜨려 넣어서 끓인 호박잎국,
겨울을 보내고 뜯어 먹으려고 심은 시금치를 솎아 무치고,
조선 배추랑 고랑 섞어 심은 열무 뽑아서 잎이 달린채로 담근 동치미,
토란을 캐면서 딸려 나온 커다란 뿌리도 먹는거라해서 감자처럼 볶아놓고,
고춧대 뽑으면서 딴 앳고추도 멸치 섞어 조려서 밑반찬하고,
우리 닭이 낳은, 노른자가 유난히 노란 달걀 작은 뚝배기에 쪄 놓고.
시골에 오면서부터 바뀐 우리 식탁은 그야말로 풀밭이다.
원래 육식을 즐겨 하던 남편도 아픈뒤로는 이런 식단에 익숙해져서
가끔 모임이 있어 외식을 하게 되면 대부분 고기를 먹게 되니
젓가락을 한참 들고 헤매게 되더란다.
보리섞인 콩밥을 국에 말고 있는 남편 앞에 앉아
나는 밀린 대답을 한꺼번에 쏟아 놓는다.
" 엄마들하고 먹으려구요, 밤고구마랑 호박고구마를 섞어서 쪘어요. 내가 농사 지은거라구 맛보라구요. 좀 일찍 올께요. 내가 오거든 같이 감 따요. 점심까진 밥 먹어두 되죠? 저녁엔 죽 먹어야 되는거죠? 내일 아침은 굶는거니까 밥 안해두 되고....다녀 올께요 ! "
가을걷이를 거의 끝낸 들판이 훵하니 여기저기 나뒹구는 짚뭉치들까지도 가슴속으로 찬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로수의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더니
가을햇살과 함께 내게로 쏟아져 들어 온다.
내일은 남편의 정기 검진 날.
힘든 검사를 하는 남편앞에 내색은 하지 않고 나왔지만
염려스러운 마음이 조바심으로 변하여 오늘 아침부턴 모든 일이 손에 설다.
여럿이서 고구마를 나눠먹고,푸짐한 배추쌈에 점심을 먹고,
구절초 몇포기를 부채에 그려넣고는 일찍 집에 왔다.
사다리에 올라선 남편이 긴감채를 들어 감을 따면 아래서 내가 받고.....
감을 따는 사람보다 밑에서 올려 보는 내 목이 더 아픈것 같다.
"감좋아하는 마누라 땜에....."를 연발 해도 즐거운 표정을 숨기진 못한다.
곶감이나 연시를 만드는 별로 좋지 않은 감이지만
연시를 만들어 냉동실에 두었다가 겨울에 먹으면 좋아서
모든 가을걷이를 끝으로 감을 따자고 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감맛 보다도
이렇게 남편이랑 둘이서 하는 일이 더 좋아서 일지도 모른다.
오후들어 흐려지던 하늘에서 가을비가 솔솔 내리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우리 부부의 감따기를 멈추게 한다.
"한접은 땄어? 좋겠네 마누라~~"
내 작업실 책상밑에다 깨끗이 닦아 줄을 세우고 있는 내게 남편이 묻는다.
"와~ 예쁘죠? 무지 부자가된것 같아요. 보기만해도 배 부른 거 자기 알아요?"
정말 그랬다.
나는 몇달새 많이 변해가고 있는것이다.
퍽퍽 줄어드는 통장의 잔고에는 무신경 해지면서 (어쩌면 일부러 그럴지도 모르지만)
돈으로 따지면 별것 아닌,
예를 들면 작년보다 많이 캔 고구마나 땅콩을
남편이랑 둘이 앉아 정리하면서 부자인 느낌이 들어서
서투른 농삿꾼이 이렇게라도 거둘수 있게 해준 하늘에게 고맙고,
밀가루 입혀 말린 애고추나 애호박 말린것을 비닐팩에 담아 상자에 넣으면서도
처음 겪어보는 신기함이랑 순간 가슴 하나가득 꽉차는 포만감에 기분 좋아져서
나는 또 부자가 되곤 한다.
만족을 아는자만이 부자라고 했던가!
남편 병을 처음 알고 점포를 정리하며 깜깜했던 순간을 나는 자주 떠 올리며
순간 순간 되살아나는 욕심을 잠 재운다.
그리고는 지금 이렇게 별일 없는 이 시간안에서
몇개의 주홍빛 감을 앞에 두어도 배 부를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낸다.
어미를 쫓아 다니며 온밭을 헤집던 병아리 다섯마리가
저녁이 되니 닭장으로 들어가
어미품에서 목만 다섯개 내놓고 나를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그걸 못 본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리고 보여주고 싶어서,
나는 또 얼마나 부자 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