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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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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BY 동해바다 2004-11-01





    비어 있다는 것...
    웬지 모를 쓸쓸함의 여운이 먼저 다가온다. 

    비오는날의 허름한 까페, 낙엽흩날리는 인적없는 고궁, 비집고 들어갈수 있는
    그리운 사람의 가슴팍, 여백의 노트, 호젓한 숲길 등 비어있어 아름다운 것들과 
    가슴시린 날의 허공, 마주 한 빈자리, 연극이 끝난 뒤, 숲속 메말라 있는 샘물 등
    채워져 있어야 할 어느 대상이 없을때 사람들은 스산한 계절에 쓸쓸함을 느낀다.

    내가 그리워 하는 빈 공간들이 하나 둘씩 채워져갈때 느꼈던 허허로움이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충족감이나 흡족해야 할 느낌을 허허로움이 대신하다니....

    어린 시절 모든 식구들이 빠져나간 빈 공간, 빈 집을 무척 좋아했다.
    두려움보다는  내 혼자만의 시간 속 고독, 궁상에 취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도 했다. 딱히 비밀스런 행동이나 일도 없었지만 그 공간 그 시간, 
    그 배경들을 너무나 사랑했었다.

    언니가 결혼을 한 후...
    가끔 언니와 형부가 며칠 집을 비웠을때 나를 불러 집을 보게 했다.
    그때의 희열감이 왜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딸셋 아들하나인 틈에 끼여 나 혼자만이 쓸수 있는 방이 없었음일까..
    언니가 사는 작은 셋방에 들어가 문을 꼬옥 걸어잠그고 주전부리 할 것들과
    읽을 책, 그리고 밤늦도록 라디오를 듣다가 새벽녘에야 눈을 부치던 날...
    
    결혼 후 신혼인대도 불구하고 남편이 숙직을 하는 날이면 나만의 시간을 누릴수
    있다는 생각에 그 기쁨 꼬옥 감추느라 애 썼던 날도 있었다..
  
    유
    유
    히
    흘
    러
    간
    세월 속에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기란 사치에 불과했고 어찌 살았는지 모를정도로
    나이테를 두르고 지금 이 중년의 고개에 올라서 있다.
  
    시부모님이 사시던 거처...
    40여년 이곳에 사시면서 빼어난 장사수완을 발휘하시며 돈벌어 자식 공부시키고
    그 터에 건물 올려 20년 가까이 살다가 아버님은 8년전 작고하시고 올봄 어머님도
    홀연히 떠나셨다.

    어머님이 병원에 계시면서 비어 있는 그 집을 나는 수시로 들락거렸다.
    예전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만한 나이도, 여력도, 위치도 아니였기에 
    그곳에서 며칠씩 있었음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고서는 그리 들락거릴 건덕지가
    별로 없었다.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살이 빠져 어머님의 침대에 누워 눈물 옆으로 지새웠던
    날이 이젠 드라마속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그 넓은 집의 물건들을 정리해 버릴 것은 버리고
    쓸만한 것들은 챙겨 지인들에게 주고 가구들과 대충 쓸것들은 그대로 두었다.
    이제 집 주인은 서울의 형님네 내외 것이기에 우리는 관리정도만 할 뿐
    어느것에도 관여할 위치가 되지 못하게 되었다.

    여름동안 형님네 식구와 서울손님들, 조카들이 별장처럼 지내며 다녀갔으니
    어찌 보면 더 잘 된일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모전여전이라더니....
    내가 즐겼던 그 혼자만의 시간을 지금 고 1인 딸이 닮아 시험때나 가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을때면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새곤 한다.
    그 심정을 알기에 기꺼이 열쇠를 내어준다.

    자식들 모두 출가하고 명절이나 휴가때 모이면 넓어야 한다고 넓게 지었던 시댁..
    40여평 넓은 거실과 방이 여름지나 가을 무렵까지 먼지와 함께 시간을 보탰다.
    서울에서 내려온 손님들에게 기꺼이 내어줄 그 집이 있어 한결 편하긴 하고
    있는 자의 큰 혜택이라는 것을 알면서 겸손함으로 절대 도도하지 않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며칠 전 
    나와는 그리 친하지 않지만 안면이 있으면서 함께 식사도 하며 수다떨었던
    이웃이 큰 일을 당하였다. 친한 이웃이 아니였지만 다리건너 그 소식은 금방 
    내 귀로 들어왔고 그날 밤 지방뉴스에도 크게 보도될 정도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었다.
    집안이 전소될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에 퍼뜩 생각난 것이 비어있는 시댁이였구 그 마음을 남편에게 
    전했더니 흔쾌히 답을 내어준다. 그리곤 서울의 형님네에게 허락을 받아내었다.

    보험회사에서, 소방서에서, 경찰서에서 다녀가는 사람들 상대하며 바쁜 그녀에게
    아니 그 식구들에게 단 한달만이라도 편하게 있을 안식처를 내어줌에 사뭇 
    뿌듯함이 앞선다.
    
    아파트벽이 시커멓게 변해있는 장면을 지나치면서 보았다.
    인명피해가 없었기에, 전소된 곳은 그 집 한곳 뿐이기에 다행이라 여기면서 
    죄인처럼 얼굴들지 못하는 그녀를 지인을 통해 만나면서 감사의 말을 전해받고
    어젯밤 열쇠를 내어 주었다.

    이제 시댁은 빈집이 아니다.
    사람만 들어가 살면 될 정도로 모든것이 그대로 있기에 그들에게는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한달동안 머물면서 그들에게 불편함이 없기를 바랄 뿐..

    쓸쓸했던 빈 집에 당분간 있을 소요를 시어른들은 먼 곳에서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다시 겨울오고 봄이 오면 또 빈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