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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해몽


BY 낸시 2004-10-27

여편은 꿈 속에서 서럽던 기분이 아직 남아 있는 듯 잠이 깨어서도 가슴이 멍멍하다.

이해되지 않는 꿈을 꾸었다.

원래 꿈이라는 것이 논리 정연한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도 생시 먹은 맘이 꿈에 뵌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꿈 속에서 여편은 고아였다.

어느 부잣집에 양녀로 들어갔는데 그 댁 마님은 그다지 여편에게 따뜻한 어머니 노릇을 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주위 사람들이 입방아를 찔 때마다 그로 인해 여편을 꾸중하기 일쑤였다.

부모없이 자라서 예의를 모른다는 둥, 옷 입는 것이 왜 그 모양이냐는 둥, 얼굴이 어둡다는 둥, 변명을 잘 한다는 둥,...

심지어 물건이 사라지면 혹시 여편이 훔쳐가지나 않았을까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여편에게 의심의 화살을 쏘아대곤 하였다.

참다 참다 못한 여편이 너무도 억울해서 엉엉울면서 부잣집 마님에게 퍼부었다.

"나도 내 처지가 처지인지라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변명 한마디 못하고 꾹 눌러 참았어요. 부모없이 자란 것이 죄라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꿀꺽꿀꺽 삼키고 살았어요. 그런데 저 더러 말이 많다구요? 참다참다  너무도 억울해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했는데 말이 많다구요? 부모 없이 자란 죄인은 억지 소리를 들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구요? 당신이 내 어머니라구요? 남들의 말만 듣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날 비난하고 야단하는 것이 취미인 당신이 내 어머니라구요?"

꿈 속에서 부잣집 마님은 여편의 항의에 비로소 정신이 들기라도 한듯 여편을 부등켜 안고 같이 울었다.

그러다 잠에서 깨었다.

 

잠이 깨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여편은 그리 억울하게 남에게 당하고 산 적이 없다.

남에게 되로 받으면 말로 갚아주는 게 여편이다.

아무리 기억 창고를 뒤져도 그런 꿈을 꿀 만한 빌미를 찾을 수가 없다.

무엇이 그리 억울해서 꿈 속에서라도 엉엉 울어 풀어야 했을까?

어린시절까지 다 거슬러 올라가며 기억을 뒤져도 억울한 삶을 산 기억이 없다.

오히려 못 된 성깔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분하고 억울한 꼴을 여편에게 당했을 지는 모르나 여편이 당할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원인이 없는 결과가 어디 있을까?

분명 무엇인가 원인이 있을텐데...

남편에게 꿈이야기를 하고 같이 원인을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다.

 

새벽 잠이 많은 남편은 여편의 꿈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 귀찮기만 하다.

그저 한숨 더 자는 게 소원이다.

여편은 남편의 심드렁한 반응이 못마땅하다.

슬금슬금 미운 생각마저 든다.

 

"맞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 밖에는 원인이 될 일이 없다."

 

"여보, 나 이제 알았다.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어떻게?"

"바로 당신 때문이잖아."

그 다음부터 여편의 말은 속사포다.

"당신이 나에게 억지소리를 수도 없이 했잖아, 내가 자기 고모부를 무시해서 인사를 안한다는둥, 아픈 사람보고 자기 잠도 못자게 일부러 뒤척인다는 둥, 동생들 학비 대는 것이 못마땅해서 엉뚱하게 집안 일 안도와 준다고 시비를 건다는 둥, ... 내가 살면서 억지소리 듣고 넘어간 것은 당신 밖에 없거든. 아들 딸을 볼모로 잡혔으니 다른 사람에게 갚듯 갚아 줄 수도 없고, 이혼할 수도 없고,... 내가 당신에게 당한 것이 어디 한두번이야?"

"이래도 당신 할 말 있어?"

여편은 흥분해서 남편의 팔을 흔들며 대답을 강요한다. 

여자는 부부싸움을 하면 히스테릭 해지는  것이 아니라 히스토릭 해진다더니 정말 맞는 말이다.

남편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여편은 잘도 끄집어 낸다.

기억이 나지 않으니 사실인지 아닌지 조차 남편은 알 길이 없다.

그저 여편 만이 아는 일이다.

여편이 그리 주장하니 남편은 그런 모양이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여편의 말을 들으면 그런 일이 있었던 듯도 하니 강하게 부정할 수도 없긴 하다.

"내가 뭐 할 말이 있나. 그저 죽을 죄를 지었지..."

"내가 그 때 얼마나 억울했는지 짐작이나 해?"

"그럼, 당신이 정말 억울했을거야. 이그, 내가 참 못된 놈이지..."

남편은 여편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한 술 더 떠서 자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스스로 성토대회라도 열 기세다.

 

"맞아, 맞아. 꿈 속의 그 부잣집 마님이 당신이었을거야. 내가 막 울면서 덤비니까 날 붙잡고 같이 울었거든.... , 자기가 날 억울하게 만들어 놓고선..."

"......"

"지금 당신도 그렇잖아. 자기가 그래 놓구선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스스로 비난하고..."

"......"

"역시 이유 없이 꾸는 꿈은 없다니까..."

 

흐뭇해하는 여편을 보며 남편은 부족한 새벽잠을 청해본다.

'내일은 여편이 무슨 꿈을 꿀까?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몽을 잘 해야 할텐데...'

꿈길로 가면서 남편의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 떠 오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