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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에서 불시에 체질양지수 측정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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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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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BY 플라타너스 2004-10-14

 

 

누가 죽어갔다고, 인연이 있어 옷깃을 스쳤던 지인이

오늘 저녁 여덟시에 세상을 떠나갔다고

밤이 깊어서 연락이 왔다.

죽음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먼 곳의 소식이지만

왠지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채 이해도 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어찌 죽음 뿐이랴.

이제는 장례식의 검은 예복을 준비해야 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가을 하늘은 깊고 맑았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곡식들의 출렁임과

발그레 붉고 탐스런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을 지나 

일꾼들이 봉분을 쌓고 있는 산비탈에 늦으막이 올라 서니

두 서넛 피붙이들만 따로 앉아서

때론 웃고 때론 굳은 얼굴로

가을 햇살을  담뿍 받고 있었다.

머리에 굴건을 매고 무명 상복을 받쳐 입은 여인 두엇이

앉아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지

몇 되지 않은 사람들 속에 유난히 돋보이는 건

고인의 생전의 흔적이 저리도 선명하게

아직 살아 있는 그들 속에 고여 있음일까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살아 그 곁을 지키는 그들은 무슨 말이 저리도 많아

마시고 취하는데 한 나절이 흐르고

봉분은 말없이  둥글게 둥글게 높아만 갔다.

이렇게 고요히 물속처럼 고요히

떠날 것을 알았더라면

산새소리 들리지 않는 적막속으로

그리 재게 돌아 갈 줄 알았더라면

망인은 그래도 그리 살았을까

우리들의 삶이 생생한 그림처럼 분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홀로 가을 볕처럼 쉬이 사라지는 덧없음에도

우리가 만나 맨 처음 사랑할 때 처럼

너를 귀하디 귀한 벗처럼만 여겼더라도

이렇게 깊은 인사 한 마디 없이

우리가 헤어지지는 않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