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앞 낡은 나무 탁자위엔 키 작고 얼굴 작은 애기 쑥부쟁이가 한달전부터 살고 있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즈음에 매장 문을 닫고 어둠이 내린 화원으로 국화 화분을 사러 갔다가
첫눈에 반한 보라색 애기쑥부쟁이를 사왔다.
샛노랗고 붉은 자주색 빛을 가진 국화 앞에 보라색 들국화는 달빛 받아 핀
들녘에 있는 쑥부쟁이 같았다. 주인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야생화라고만 했다.
두 말하지 않고 쑥부쟁이라 추정되는 화분을 두 개 사왔다.
한 개의 화분은 플라타너스 나무 밑둥에 내려 놓고
한 개의 화분은 비바람 맞고 자연스레 낡아진 나무 탁자에 올려 놓았다.
플라타너스 나무 밑둥에 자리를 잡은 쑥부쟁이는 햇살이 스미는 오전이면
창가에 나슬거리는 연보라색 망사 커텐 보다 신비스럽다면...
낡은 탁자 위에 살고 있는 쑥부쟁이는 차 한잔과 분위기를 맞추는
가을날의 눈물 그렁이는 그리움 한편이리라.
점심을 먹고 속살이 다 보이는 유리잔에 커피를 간을 잘 맞추어 요리를 한 다음,
매장 유리 문을 열고 탁자와 한 몸인 나무 의자에 앉아 커피잔을 커피가 쏟아지지 않게
살며시 올려 놓고, 들가에 핀 쑥부쟁이 꽃보다 작다하여 애기쑥부쟁이라
이름 불러지는 꽃과 일분 정도 눈을 맞추고 있는다.
혀을 데일 것 같은 뜨거운 커피가 한 김 빠진...설탕,프림이 잘 어울어진 커피를
한모금씩 마시면서 쑥부쟁이꽃과 이야기를 나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아이와 동네에 있는 얕트막한 산에 갔었다.
산 초입에 들국화 꽃들이 한창 물이 들어 있었다.
“보라색 이 꽃 이름은 쑥부쟁이고, 요기 하얀색은 구절초고, 저기 노란색은 감국이고, 이 꽃들을 통틀어 들국화라 하는데, 엄마는 보라색 쑥부쟁이 꽃을 제일 좋아 해.”
나는 꽃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만져가며 설명을 해 주었다.
아이도 나를 따라 들국화들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씩 보더니
“엄마, 저두요. 쑥부쟁이를 제일 좋아할 것 같아요. 보라색이 참 이뻐요.”한다.
아이와 손을 잡고 들국화의 입술에 직접적으로 코를 비비고,
들국화를 앞에 앉혀 놓고 칭찬을 하다는 것은 낯이 붉어지고, 팔뚝에 닭살이 돋아 났지만
표현할 수 없이 즐겁고, 가슴이 뜨겁도록 황홀한 일이었다.
내게 땅이 주어지고 앞 마당이 몇평 여유가 생긴다면 쑥부쟁이 꽃을 빙 둘러 심어 놓고 싶었다.
그러니까, 쑥부쟁이가 담이 되도록 심어 놓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오솔길 가장자리에도 한줄로 풍성하게 보라색 쑥부쟁이를 키워
가을 바람에 흔들흔들 흔들거리게 하고 싶었다.
군데군데 바위가 있으면 바위틈엔 하얀색 구절초를 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혼자서 흡족해 해서는 삐질삐질 웃었다.
남들이 보면 조금 맛이 간 여잔가? 아님 가을에 푹 절은 여자군 했겠지만..
지금 나에겐 쑥부쟁이를 심을 땅이 주어지지 않았다.
매장앞 탁자에 올려 놓은 쑥부쟁이가 나의 상상속의 주인공이 되어 나와 마주 보고 있지만
지금 난 욕심없이 만족스럽다.차 한잔을 마시며 좋아서 셀셀 웃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11월 초에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결혼하기 한달전에 선배 언니가 결혼을 했는데,
선배언니의 부케는 보라색 아이리스였다.
꽃다발로 만들어 안 듯이 들고 결혼식장을 걸어오는데
아..나도 저렇게 부케를 만들어야겠다. 아이리스로 말고 쑥부쟁이로...
그러나 뭐든 현실적이지 않으면 실천이 어려워지는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들꽃은 일단 보관하기가 어렵고 꺾어 들면 바로 시들어 버리고,
시골이라면 그 주변 들녘에서 꺾어 만들겠지만 서울이라 쑥부쟁이 만나기도 힘들고 해서
보라색 쑥부쟁이로 부케를 만드는 건 상상으로만 만족해 하고 금방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보리색 카라꽃으로 동그랗게 엮어 만든 부케를 들고 결혼식을 올리는 내내
카라꽃은 내 심장 박동과 손 끝의 떨림으로 발발발 떨리고 있었다.
시들지 않은 것 같은 싱싱한 카라꽃 부케를 들고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혼생활은 꺾어든 쑥부쟁이 꽃처럼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물으면 난 단번에 쑥부쟁이요 한다.
무슨색 꽃이 좋으세요 하고 다시 묻는다면 여름엔 청보라색 달개비꽃이라 말할 때도 있지만
가을이 오면, 가을이 물들면 난 당연하게 연보라색으로 피는 저 들녘의 쑥부쟁이 꽃이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