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별 이유 없이 하루를 쉰다고 해서 둘이 나섰다. 난 원래 이유 같은 것은 잘 묻지 않는다. 그럴만 하겠지....
주섬주섬 낚시채비를 하고 나선 시간이 오전10시쯤 이었다. 갑자기 떠나는 작은 가을 여행이었다.
단풍이 든것은 아니었지만, 가을은 어느새 우리에게 깊이 들어와 익숙해져 있고, 제법 바람도 싱그러워서, 그 무덥던 여름의 기억 같은 것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변덕이 많대던가?....
회사 봉고를 몰고 갔는데, 조수석에 앉아서 가을빛이 완연한 창밖을 보면서, 우리의 중형차가 아닌 회사의 낚은 봉고를 타서 일까? 잠시 난, 꼭 시골로 장사를 다니는 가난한 부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우린 그렇다면 어떘을까? 난, 손풍금 아줌마처럼 시골장들을 돌아 다니며, 민초들의 삶을 글로 옮기고 그들과 어울려 구순구순 살아갈까?
토담집 뜰에 봉숭아랑 채송화랑 저녁에 피는 분꽃도 심고, 저녁이면 담으로 구불구불 올라가며 노란꽃을 피우며 윤기 흐르며 매달린 호박을 따서 된장찌게도 끓여 먹고, 밤에는 평상 앞에 모기불을 피우고 , 그위에 아이들과 우리 부부가 거므스레하게 그을린 얼굴로 같이누워서 하늘에 총총히 뜬 별을 세곤 했을까?
이런 꿈을 잠시 꾸어 보는것은, 도시의 때로 얼룩진- 권위 의식과 우월주의가 배어 있는- 나의 의식에 조금은 청량제가 되어 주었다. 아마도 서울 토박이인 우리 서방님에게는 없는 생각일 수도 있을것 같다. 그는 시골 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아주 도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내가 경험하여 알고 있는 시골 생활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길가에 음식점에서 점심도 먹었다. 우연히 들른 길에서 맛있는 음식점을 만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 중에 하나다. 오늘이 그랬다. 두부찌게가 상냥한 주인과 어울려 맛이 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어우실이라는 조그만 저수지 였다.
여주와 이천의 어디쯤 되는, 극동 대학을 바라보며 좌회전해서 다리밑을 지난 곳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어우실이란 아주 한적한 유료 저수지는, 평일이라서 조용하고,물도 맑아서, 모처럼 한가하고,조용한 낚시를 했다.
나는 두칸짜리 낚싯대 한대를 그가 펴주고 그는 긴 두대의 낚싯대 를 펴고 둘이 나란히 앉았다. 오늘은 잘 던져서 잔소리를 안들어야 할텐데....
우리 둘만이 있는 물가는 시간이 머문듯 평화로웠다. 이렇게 아무도 없이 우리만 하는 플레이를 골프에서는 대통령 골프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대통령 낚시를 한 셈이다.
병풍을 두른듯 양 옆으로 산이 둘러 쳐지고 앞으로는 뚝방이 보여서 하늘이 틔여보이고, 때때로 낚싯대에 앉는 잠자리는 새삼 가을을 느끼게 해주었다. 잠시 앉았다가는 날아 가고, 또 다시 와서 앉고, 또 두마리가 같이 앉기도 하고..... 잠자리가 유난히 많은 물가 였다.
하늘에 가득한 잠자리의 군무를 바라 보노라니, 난 시간을 잊고, '나물 먹고 물마시고 하늘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다' 고 흔연히 노래한 시인이 생각이 났다. 맞다! 우리의 삶은 복잡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없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너무 간단하고 쉽기만 한 것을.... 이런 만들어진 시간들이 우리 중년의 생활을 마음으로라도 풍요롭게 해준다는걸 감사해야지.....
누치-나중에 이름을 알았다- 를 그와 둘이서 많이 잡았다. 붕어는 작은것 몇마리를 잡았고,.... 그래도 연신 고기가 나와서 재미 있었다. 부족한 솜씨지만 계속해서 고기가 나오니, 시간을 잊었다.
밤이 내려 앉으며 수면의 산그림자도 밤의 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연한 달빛 아래서 그와 사발면도 끓여 먹고, 커피도 마시고, 9시가 넘어 돌아 오면서, 난 그냥 행복해 지기로 했다. 행복하지 못할게 내게 뭐 있겠나? 아니 그러한가?
- 2004년 9월22일 무작정 떠난 어느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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