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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39

[결혼이야기] 멋없는 프로포즈에 넘어가다니.


BY 아들셋맘 2004-09-24

프로포즈를 받았긴 받았었나.. 가물가물해지는 결혼7년차입니다.

번갯불에 콩볶아먹듯 결혼했습니다. 딱히 어디가 맘에 들었던것

같지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오래전에 만난 친구처럼

편하고 안보면 궁금하고 했어요..


신입사원 수련회때 만났어요.

군대도 안갔으니 또래 남자사원들보단 나이가 제일 어리더라구요..

재수해서 대학들어간 저랑 나이가 같더라구요.. 25살


그냥 착해빠지기만 한 그가 맘에 들었습니다.

멋도 부릴줄 모르고, 또 말주변도 별로 없어 보이더이다.

 

그렇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이니 뭐가 제대로 보일리가 있나요?

두툼한 안경, 항상 입고다녀 끝단이 닳아빠진 검은 바바리..

이 모두가 그를 빛나게 하는 소품처럼 보였다니까요.


자.. 이제부터 멋없는 우리의 프로포즈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그가 결혼하자고 한건 만난지 한달 조금 안되었을때입니다.

회사 입사하고 1개월뒤 제 대학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입사한지 한달도 안된 신입사원이 여자친구 졸업식이라고

휴가를 당차게도 내던졌답니다.

나중에 들은일인데, 회사에서 짤릴 각오하고 왔답니다.

(그때 잘렸으면 결혼 안해주었지롱~~)


졸업식을 마치고 우리는 가족들, 친구들 과감하게 다 따돌리고

인천 월미도로 향했습니다.


어스름이 일기 시작하는 저녁 6시가 되었구요.. 2월이라 찬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불었어요.. 게다가 졸업식 멋낸다고 짧은 스커트에

가당치도 않은 높은 구두를 신은지라 영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바다바람 맞으며 갖은 포즈를 다 취했습니다.

저녁이라 배에 사람은 별로 안탔어요.. 선상에 올라가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춥더라구요.

그래서 선상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조명도 칙칙하고 음악도 조용한게 좀 스산했어요.. 옆을 보니 한 두 테이블에

사람이 있어서 말하는 소리가 다 들릴정도로 조용했습니다.

밖에서는 신나게 떠들었는데, 들어오니 좀 어색하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가자고 그가 그러더라구요..

밖에는 추워서 그런지 우리 둘뿐이었죠.


어색한 분위기때문에 저는 그냥 물밑만  보고 있는데... 그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뒤에서 제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어요.

여태까지 그가 제 어깨에 손을 올린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저는 넘 놀라서.. 갑자기 피하자니 그렇고, 가만있자니 더 웃기고. 그냥 좀

있기로 했어요.


그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제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네가 해 주는 밥 먹고 평생 살고 싶어..!"

참..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그가 좋은건 사실입니다.

그치만 그냥 편한거지.. 결혼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그가 손을 제 입으로 가져가면서

다시 말하더군요.


지금은 대답하지 말라고.. 그냥 있으라구요..

느낌에 그가 입을 맞추겠거니..(저 프로 아닙니다) 생각하고 무드있게

눈을 감는데, 갑자기 손이 시리다는 생각이 들면서 퍼뜩 놀랐습니다.


"어머.. 나 카페에 장갑하고 목도리 두고 왔다!"

갑자기 그때 왜 그런대사가 나오는걸까요? 우리는 카페로 마구 달려갔어요..

아직 테이블에 그대로 있더라구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집어들고 다시 선상으로 나와서는 얼마나 마주보고

 웃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신랑이 절보고 놀립니다.

그때 무드 없는 여자라는걸 알아봤어야 하는데 속았다나요?

치.. 그럼 뭐 저는 안속았나요?


순진하고 착하고 대담한척 하더니, 저보다 더 잘삐집니다.

이렇게 우리부부 아옹다옹하며 살고 있어요..  동네에서 길잃으면

당장 우리집에 데려다줄만큼 신랑과 붕어빵인 세 아들놈과 함께요! 

 

맨날 무드없다고 놀림받는 저지만 오늘은 용기 내 편지한번

써 볼랍니다... 

 

쌍둥이아빠~

이렇게 당신을 불러봅니다.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당신 얼굴을

보지만, 당신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지금 우리에겐

없지요.


다른사람들은 집을 쉼터로 여기는데 당신은 집이 또다른 일터라고

한숨쉬며 이야기했던적 있었지요.


29개월, 5개월쌍둥이.. 주위분들이 우리 다섯식구가 지나가면

한번씩 쳐다보곤 하죠?


"엄마, 아빠 무지 힘들겠어요." "3년동안은 꼼짝도 못하겠네."

하며 말입니다.


우리는 그때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알듯모를듯 미소만 짓고

있었죠.


당신 힘든거 다 알아요.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윗옷 단추를

풀고 와서 현관문 열자마자 들리는 쌍둥이 울음소리, 큰아이는

온 방안을 어지럽혀서 발디딜틈조차 없지요.


당신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큰아이를 억지로 떼어 놓으며

바지를 벗고, 쌍둥이중 한아이를 안고 한손으로 어설픈 저녁식사를

합니다.


아이들 깰까봐, 큰소리로 웃어보지도 못하는 지금의 우리.


잠든 당신의 얼굴을 봅니다. 왼쪽 이마가 찢어 졌나봐요.

아마 아침 출근길에 큰아이가 보채는 바람에 큰아이 손에

긁혔나봅니다. 남들이 보면 부부싸움한줄 알겠네요!!후후



밖에 나가는건 엄두도 안나고, 또 나간다해도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만큼 우리 부부는 아이들 챙기느라 늘 바쁘지요.


당신은 저녁에 회식한번 제대로 못하고, 친구들 동창회 한번

편하게 못나가지요.


하루종일 회사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저녁에 아이들을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안아주는 사람.. 고마와요.


난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했나봐요. 이렇게 귀한 당신이

내게로 온거 보면...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