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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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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삼십삼주년에...


BY 모모짱. 2004-09-14

 


오늘은 결혼 삼십삼주년 되는 날이다.

새벽에 눈을 뜨니 남편이

'삼십 삼년동안 나같은 사람하고 사느라고 수고 많았어'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결혼한 날이라고 하면 되지 왜 거창하게 기념일이라고

해야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었고 국치일도 기념하느냐는 말도 한적이 있던

남편에게서 기대하지 못한 아침 인사다.

이 사람도 늙었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는 시아버님이 옛날에 어느 화가한테 선물 받으신 그림이 한점 있다.

두여인이 다정히 있는 그림...

두 부인이 사이좋게 지내시라는 의미로 그 화가가 그려준거라고 했다.

나의 시어머님과 작은 시어머님을 그린것이란다.

그 그림은 항상 우리집 거실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떼고 싶었지만 워낙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라

남편은 거의 가보로 취급하고 있어서 말을 못하고 있었다.

 

옥색저고리가 본부인이고 분홍저고리가 작은 부인이라는 설명은 누차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늘 남편이 내게 그 그림 위치를 조금 옆으로 옮겨야겠다고 말했다.

정가운데가 아니라고...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뗍시다. 나는 저 그림이 기분 나빠요.'

남편은 화를 냈다. 저게 얼마짜린데 그러냐고 했다.

'얼마짜리건 가풍을 말하는거 아니예요?'

이왕 말이 난김에 정면도전을 한번 해보자는 심사가 일어났다.

'그래. 가풍이다. 그럼 가풍이지.'

'아들들한테 물려주면 며느리가 좋아하겠네요.'

'당신이 더 좋겠지.며느리 미워하니까.'

'그 문제하고는 다르죠.'

'열 며느리 마다않는게 시어머니라며.'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더이상 말하지않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설겆이를 했다.

그릇씻는 소리가 자연히 클수밖에...

대단한 가풍이다... 자랑인가...중얼거리면서.


설겆이를 끝내고 거실로 돌아왔더니 벽에 그림이 없어졌다.

그림은 방구석에 얌전히 놓여져 있었다.

나는 남편을 돌아다 보았다.

남편은 씩웃었다.

나는 신문지로 그림을 포장하면서

'내가 보관은 잘 할테니까 나중에 값 나갈때 팔아 치웁시다.'했다.

'마음대로...' 남편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한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아들이겠어요.'

'그러지뭐.'

이렇게 순할수가...


오늘 결혼기념일 선물로 나는 앓던 이를 뺀것처럼 상쾌한 선물을 받았다.

가풍아 잘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