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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한 무궁화꽃의 기억


BY 개망초꽃 2004-09-10

매일 버스를 타고 집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매장으로 출근을 한다.
10분 정도 가는 사이 차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창밖 풍경을 하나도 빼먹지 않으려고 차창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는다.
그저...잔잔하게...그냥...있는 그대로...
그리하여...내 눈에 담고 내 가슴에 쌓아둔다.
가을이 차분하게 오고 있다.
육교밑엔 우산쓰고 있는 토란대가 무성하고,
텃밭 한쪽에선 염색을 한 머리카락에 찰지게 가을을 매단 수수와
비어 있는 가슴으로 옥수수대가 누렇게 성숙되어 가고,
저 멀리 가보지 못한 언덕엔 나뭇잎이 초가을에 유행한다는 카키색으로
염색을 하려고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들꽃은 이제 거의 없다. 여름 들꽃은 사라지고 가을 들꽃은 아직 이르다.
그런데...무심히 보아온 꽃나무가 있었다.
무궁화였다. 연보라색으로 흰색으로 분홍색으로 꽃은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 꽃이면서도 별로 관심도 없고, 그렇다고 썩 이쁘지도 않고,
들꽃처럼 아기자기 하거나 청순해 보이지도 않고,
그랬다. 무궁화꽃이 여름부터 피어 있었을 것이다.
진작부터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을텐데...

여름꽃이 다 지고 가을꽃은 아직 이른 지금에서야 무궁화꽃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키가 반에서 중간쯤 되겠구나, 뼈대는 가늘고 얼굴은 크면서 한겹이고,
꽃 색도 꽃모양도 힘이없어 보이는 흐리멍덩한 그냥 그렇게 피어있던 꽃이었음을...
반에서 그리 말썽꾸러기도 아니고 발표를 잘 하던 아이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거나 재주가 많은 아이도 아닌 평범한 학생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반 아이들도 관심 없었던 친구.
그러나 한 가정에 소중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
그런 사람처럼 무궁화꽃은 피어 있었다.

길가에 무궁화꽃을 보니 아픈 기억 한줄기가 흐리하게 보인다.
그때가 초등학교 몇학년이었는지 조차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오래된 이야기 인...
언제나 밝고 튼튼하신 큰이모가 갑자기 쓰러지시더니 폐암말기라는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수술도 소용없고 세상을 등질 그날을 기다리며 진통제로 하루를 절절거리며 사셨던
그 해 여름날...
큰이모를 보러 엄마와 막내동생과 함께 이모집엘 갔었다.
큰이모는 진작부터 우리식구들을 기다리며 봉당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 있으셨다.
아프기전의 이모모습과 너무나 다른 이모를 보니 낯이 설고 무서웠었다.
이모가 날 보고 힘없이 웃는 모습도 무섭고,
연실 숨이 차서 헉헉이며 괴로워 하시는 것도 불쌍하면서도 무서웠다.
엄마와 이모는 마루에 앉아 자꾸만 자꾸만 우시고...
그 날 큰이모네집 마당엔 한 그루의 커다란 무궁화나무 가지 끝마다
파리한색 무궁화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무궁화꽃을 보며 이모의 병든 얼굴색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난 이모얼굴을 빗겨보며 무궁화꽃을 바라보고 또 울어 퉁퉁 부어오른 엄마를
번갈아 눈치것 쳐다보곤 했었다.
두 달 뒤 이모는 돌아 가셨다. 이모가 화려한 꽃상여 타고 가던 날.
시들어진 무궁화꽃은 더 파리해져 휴지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의 아버진 오래도록 아프다가 돌아가셨다.
별로 많지 않던 재산은 병원비로 다 써버리고 돈 지갑을 깨끗하게 비워 놓고
화사하다 못해 화려한 꽃상여 타고 냇물을 지나 두둥실 떠나가셨다
엄마는 자식 셋을 누워 놓고 쪼그리고 앉아 눈물로 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그때 막내 아들은 16개월된 아기였는데, 아기는 엄마가 왜 우는지 아빠가 상여를 타고 왜 산으로
갔는지 냇물을 건너 떠나갔는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전혀 모르는 철들지 않은 아기였었다.
그 때 내 나이는 8살이었으니까 엄마가 우는 이유도 아빠가 상여를 왜 타고 갔는지도
아는 나이였고 큰 동생은 여섯 살었는데 큰 동생도 집안이 돌아가고 흘러가는 걸 몰랐었겠지만
집안의 맏아들이었으니까, 암튼 직업도 돈도 없던 엄마는 세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세 아이중 하나만이라도 부잣집으로 보내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고,
셋 중에 한명인 세상 돌아가는 걸 전혀 모르는 막내 동생을 남의집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내리셨다. 동생의 부모가 될 사람들이 두 눈이 쭉 올라지고
손두덩이가 두툼한 막내동생을 보고 두 말없이 데리고 가겠다고 날짜까지 받아 놓았는데...
큰이모가 안된다고 하시며 내가 내 자식같이 키우시겠다며 기저귀 보따리를 싸 갖고
막내동생을 들쳐 업고 뒹골이모네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막내동생은 큰이모네 막내 아들이 되어 이모집에서
먹고 자고 싸고 무럭무럭 자라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일 없이 잘 살 것 같았는데, 막내동생이 초등학교 들어가지 전쯤
이모는 폐암말기라는 사형선고를 받으시게 된거였다.
차창밖에 있는 무궁화꽃은 색도 여러가지였다. 분홍색, 흰색, 연보라색,
아마도 이모네 집 마당에 있던 꽃은 연보라색이 아니였나 추측해 보았다.

막내동생도 무궁화꽃을 보면 큰이모가 생각난다고 한다.
어쩌면 서로 길을 걷다가 마주쳐도 모를 남남이 되었을텐데...
어쩌면 사람을 찾는 아침방송에 나가서 두 눈이 쪽 찢어지고 강원도에서 태어난
남동생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를 운명을 큰이모로 인해 남매로 잘 살게 해 주셨으니...

짙은 향기도 없고 모양새도 특이하지 않은 그저 그런 꽃이지만
가면서 오면서 무궁화꽃과 겹쳐진 큰이모와 막내동생을 보았다.
무궁화는 도로가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심어져 있다는 걸 알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계절에 무궁화꽃이라도 볼 수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고,
멀리 사라져 잠시 물러나 버렸던 기억까지 생겨나게 했으니...

학창시절엔 노래라도 불렀고,
학교에서는 교실과 교과서에서 자주 접했던 무궁화 사진.
그리고 이모집 마당에 파리하게 피어있던 무궁화 꽃.

"무궁화~~무궁화~~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