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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3

친구야..모하고 있니?


BY 밤톨냥v 2004-08-26

계절의 변화가 참 무상합니다..

거침없이 무섭게 몰아 부치던 무더위도 어느 새 기억 저편으로 물러날 채비하고

새벽 댓바람 싸늘한 공기가 주는 청량함에 따끈한 차 한잔이 그리워 지니..

 

어지간히도 숨 턱턱 막히게 했던 올해 였는지라

마음 맞는 친구들 안부 챙길새도 없이 계절을 놓쳐 버렷습니다.

"이젠 만나도 되겠지?"  팽팽함이 느껴지는 친구의 경쾌한 소리에

단숨에 "그래..만나야지..다들 보고싶다." 

 

여름내 더위에 시달리느라 얼굴에 계급장은 얼마나 더 달고 있으려나..

힘들어지는 경제에 다들 살기 힘들다 아우성 들인데 혹여 형편 나빠진 친구는 없는지..

부부사이 위태하던 친구는?

식당 개업시기 놓쳐 전전긍긍 하던 친구는?

건강 때문에 염려하던 친구는?

갑자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들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나의 무심함에

진저리 칩니다..

 

"야..너 언제까지 우리가 너 찾을거라는 생각 버려라..요것이 배가 불러서..꼭 형님들이 전화를 해야 하냐?"

제가 이른 생일로 다른 동창들 보다 한해 일찍 학교를 들어간 탓에 틈만 나면 저를 놀려 먹습니다..

"에구..오뉴월 하루 땡볕이 어디인데..언니, 오빠로 잘 모셔라.."

"니들 까분다..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야..너 나보다 허리 굵어?  나보다 배 더 나왔어? 팔뚝살 더 많어?"

요것들이 치사하게 인신공격을 하다니..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은 진짜 저의 친언니 보다도 다정해 보입니다..

오빠가 없는 저로선 '아..오빠는 저런 존재구나!'  싶어 집니다..

 

30년이 지나 옛둥지 찾아 모여든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드리워진 세월의 흔적에 생경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한참을 더듬어 더듬어 기억을 되살려 내곤

" 아..그때 저 친구는 이랬는데..역시 .."

"어마 저 애는 예날 그모습이 전혀 안보이네..옴마야.."

그럼 나는?

후다닥 제모습 확인하곤 볼 발갛게 물들여 짖궂은 아이들 시선 한몸에 받고..

 

그게 벌써 오년전 모습인데..

그동안 우리는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이 세월의 덧께가 내려 앉았고

과거를 공유하는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더 많이 헤아릴줄 아는 사이가 되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서로의 안부를 늘 궁금해 했고

혹여 어려운 일 겪고 있는건 아닌지 촉각을 세웠고

안좋은 일 있다하면 바로 모여 위로하고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향긋한 차 한잔 앞에 두고 도란도란 정담 나누고 싶습니다..

알싸한 소주 한잔도 괜찮을 듯 하고요..

숯불에 제 몸 던져 지글지글 타오르는 고기 한점도

매캐한 연기내도 다 그리워 집니다.

 

밤새 비가 와서 인가요?

아침 공기에 느껴지는 차거운 한기에 부르르 몸을 떨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