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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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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밥 상


BY 옛 이야기 2004-07-16

내가 어렸을때 엄마는 장사를 다녔다.

시골에서 살았지만 땅 뙈기 하나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다.

젊었을때 우리 엄마는 참 인물이 고왔다. 인물값을 하느라 그다지도

박복했는지 어려서부터 온갖 궂은 일 을 다 해본 엄마 였기에 장사를

한다는게 그리 새삼 스러운 일 이 아니었다고한다.

 

남편이란 사람은 그림의 떡 처럼 누가봐도 잘 생기고 많이 배웠기에

실질적인 가장 노릇은 애시당초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시골에 흔하디 흔한 소 를 보고 무서워하는 남자가

무슨 농사 일 을 할수 있으랴.

하루는 아버지하고 길 을 가는데 방앗간 집 골목에 소 를 매어 놓았다.

좁은 골목에 소 가 턱하니 길 을 막고 있으니 아버지가 어쩔줄을 몰라했다.

보통 시골 사람들은 소 엉덩이를 툭툭 쳐가며 소가 비켜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 가는데 아버지는 소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주인을 불러

소 를 좀 치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방앗간집 아지매가 마구 웃으면서

아버지를 놀리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하이고 세상에 누구 아버지 눈 이 커서 그란가 정말 겁 이 많네예

이 순한 소가 뭐가 무섭다꼬 그래 겁 을 냅니꺼?

이리 와 보이소 이래 밀마 아무소리 안하고 길 비키 줄낀데

우야꼬 참 말로 우스버 죽겠데이."

 

그 이후로 온 동네 방네 소문이 나서 아버지가 지나가면 정말 소 를 무서워

하냐며 붙잡고 묻기까지 하였다. 내가 곁에서 보았으니 아버지가 아니라고

변명도 못하고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엄마는 여리고 고운 외모와는 다르게 억척스런 여자로

살지 않을수가 없었다. 알뜰하고 손 끝이 야물었던 엄마는 살림 솜씨도

뛰어나서 한가지 재료를 가지고 다양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시골 텃밭에서 흔 한 야채들을 가지고 하루는 이렇게도 만들고 다음 날 은

또 색다르게 만들어서 항상 밥 상을 푸짐하게 했다.

장 떡 을 짭쪼롬하게 부쳐 주기도 하고, 딩기장도 어릴적 별미였다.

부추를 가지고 그냥 생으로 무쳐서 먹기도하고, 밀가루를 버무려서

꽈리고추 찌듯 밥 뜸 들일때 쪄내어서 초 장에 찍어 먹기도 하였다.

매일  아침, 저녁을 할때 뜸 들일때가 되면 쩌어렁~하고 솥두껑을 열어서

누런 삼베 보자기를 깔고 가지나 호박 부추등 빠뜨리지 않고 쪄 내어

냉국을 만들기도하고 무쳐서 먹기도 하였다.

 

여름날 어쩌다가 큰 맘 먹고 장 에서 돌아 올때 수박을 사 올때가 있다.

그런 날 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마당에 덕석 깔고 쑥 으로 모깃불

피워놓고, 수박을 뚝뚝 잘라 놓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담 너머로 고개를

빼들고 참견을 하다가 엄마가 오라는 성화에 못 이기는척 와서는 함께

나눠 먹었다. 수박 껍질을 가지고 나물을 볶으면 야들야들한

느낌이 좋아서 맨 입으로 마구 먹어대기도 하였다.

 

장사를 다니면 피곤하고 힘 들어서 아무것도 하기 귀찮을텐데 엄마는

그런 내색 안하고 부지런히 종종 거리며 안,밖으로 일 을 야무지게 잘했다.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느닷없이 먹고 싶을때가 있다.

몇일전에도 부추를 밀가루에 쪄서 초장하고 내 놓았더니 식구들 반응이

별로였다. 나 혼자서 맛으로 먹는건지 추억으로 먹는건지 어쨌든 한 접시 다

먹어 버렸다. 그제서야 알수없는 어떤 허기가 가시는것 같았다.

아무 하고도 공유 할수 없는 어릴적 기억들이 있다.

부모님 모두 돌아 가시니 더 허기가 질때가 많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해 가는 유년의 알싸한 기억들...

이제는 그 누구와 이런 기억들을 나누어 가질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