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가요를 들으면 상상속에나 나오는 다임머쉰을 타고 과거로 과거로 달려가게 된다.
난 가요를 좋아한다.팝송은 가사 전달이 안돼서 감정이 잡히지 않아 그저 그렇고,
가곡은 거나하고 우아스러워서 내 현실과 맞지 않지만
학창시절에 배웠던 우리 가곡은 좋아하긴 좋아한다.
그 집앞이라던가 수선화라던가 동심초를 눈을 감고 들으면 단발머리 나폴거리며
음악책 끌어 안고 음악실로 가던 길이 생각난다.
교실뒤 돌 징검다리 놓인 사이로 잡초가 무성했던 그 길...
클레식은 잠깐 듣는 건 좋은데 아는 것이 별로 없기도 하고
오래 듣고 있으면 지겨워져서 그리 즐겨 듣지 않는 편이다.
가요를 많이 접하게 된 건 여고시절부터일 것이다.
특히 여고2학년 때 제1회 대학가요제가 열렸는데
이 노래들이 국어 선생님이 들려주던 시 한 귀절마냥 얼마나 멋스러운지,
구령대 옆 벤취 위에 핀 보라색 등꽃처럼 주렁주렁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인지,
마냥 푸릇했던 우리들 이야기처럼 싱그러움이었는지는
같은 시절을 살았던 사십대들은 알 것이다.
대학가요제에 빠져 밤늦도록 라디오를 들었을 때도 이때였고,
그 때엔 괜히 눈물이 툭 떨어지던 사춘기를 깊게 앓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모든 가요의 방향을 틀어준 건 짝꿍의 영향력이 대단했는데,
공부보다는 가요 가사를 공책에 차곡차곡 적어 새벽이 오도록 외웠고
가을비 추적이던 소풍날 전교생 앞에서 통기타를 더 잘 튕겼고,
학생신분을 벗어나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눴던 대범한 짝꿍이었었다.
성이 양씨라서 별명이 양아치라 불리우던
정학을 안당할듯 당할듯 안당한 문제성을 내포한 친구.
난 친구로 인해 가요를 배웠고 친구는 나를 통해 편지쓰기를 배웠으니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은 하나밖에 없는 짝꿍이었고 제일 가까이 앉아 있던 나의 친구였다.
짝꿍은 대학가요제 레코드판과 소형전축을 학교에 까지 들고 와서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뒤의 책상들을 밀어 놓고,
학급 친구들이 빙둘러 앉아 레코드 자켓을 돌려 보면서
복도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은 정도로 낮게 가요를 따라 불렀다.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은 나 어떡해였고 금상은 하늘이었고 동상은 젊은 여인들이었다.
나는 대상곡보다는 하늘과 젊은 연인들을 더 애창했었다.
"작은 구슬 모래알이 물결 속에 부서지고 구름 걷힌 저 하늘엔 맑고 고은 무지개"
모래알이 구슬처럼 구르는 듯한 맑고 청아했던 박선희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부서진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이~~세상 모든것 내게서 멀어져가도..."
이 가요을 알게 되어 가슴 하나가 두방망이질하며 얼마나 많은 낮밤을 설레임에 떨게 했던가?
연인이 뭔지도 모르면서 고향에서 흔하게 보던 느티나무 밑이나 미루나무 밑을
얼굴도 모르는 남학생과 걷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짝꿍은 친구들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뻔하게 일등으로 결혼을 했다.
만삭이 다 된 몸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염없이 눈믈을 흘리던 모습이 어제일처럼 보인다.
아들 딸을 낳고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한 것이 레코드방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가요를 유행시켰던 장본인이었고
공부는 뒷전이고 가요가 앞전이었던 취미와 특기가 직업이 되어 별탈없이 잘 살고 있다.
요즘도 가끔씩 라디오에서 추억의 가요가 나오면
여고시절로 돌아가 교실뒤에 친구들과 수건 돌리기를 하듯 앉아 있는다.
검정색 둥그런 레코드판이 돌아가면 귀를 열고 마음을 교실밖으로 띄우고
아름다운 가사와 부드러운 음악에 나를 휘이훠어이~~날려 보낸다.
빼그덕 거리는 교실창을 넘어 냄새 꿀럭이던 화장실을 지나
봄이면 눈송이되어 날리던 앵두나무 숲길을 따라 뒷교정을 거닐면
그 곳엔 새초롬한 문학소녀가 있고 내 직업이고 싶었던 국어선생님이 서 있고
나만 사랑해 주는 잘생기고 다정한 남학생이 내 손을 꼭 잡고 거닐고 있다.
지금도 교정엔 운동장만을 바라보던 한그루의 외롭던 해당화가 만발했을까?
음악실로 올라가던 화단에 자주 달개비꽃이 비에 젖은 얼굴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교문입구를 시작으로 3학년 1반 교실 끝트머리 화단까지
여름이면 피어 나던 장미꽃도 색색으로 빛을 내고 있을까?
가요를 전파 시켰던 짝꿍인 양아치와
여자 앞에선 무뚝뚝한데 남자 앞에선 온갖 애교를 떨던 냉숭덩어리와
목소리도 하는 짓도 왈가닥이었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와
뭘 모르게 순진하다고 붙혀진 몰순이었던 내가 가요를 따라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는 걸
꽃들은 몰랐겠지 친구들도 나도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