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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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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면...그러고 싶다.


BY 다정 2004-07-02

베란다 창문을 제멋대로 그으며 비가 온다.

빗길을 달리는 차의 소리는 여운을 남긴채 사라지고

앞동,그리고 그 옆동의 시커먼 몸으로 간간히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걸 보니

지금까지 잠들지 않은 모르는 그들에게 자꾸만 안부라도 묻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다.

여느날과도 같은데

오늘의 이 시간은 어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타닥이며 두들기는 내 손가락도 처음 보는 이의 것처럼

낯설게만 느껴진다.

 

한동안은 바닥을 알수 없는 우울에 맞닥뜨려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던지다시피 햇살을 받으며 나갔을때에는

어느새 민소매의 반바지가 거리의 태반을 점령하고 있었다.

뒤적이며 동지를 찾고

마주치던 그들에게 말도 붙여 보고

혼자가 아닌 여럿의 둘레에서 조금은 버거워하다 보니

계절의 수위는 조금씩 심장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잘은 못하지만 폼나게 술도 한잔씩은 가끔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멋모르고 벌컥이며 마셨던 스무살의 알콜은 겉멋만 잔뜩 들여진 조화처럼 객기가 넘쳤었다.

방파제에 걸터 앉아 그 애를 쳐다 볼 때의 그 해 여름은

사그라지지 않은 불씨처럼 검은 불꽃을 피우고

행선지를 적지 못한 이상한 기차표를 가진 이처럼

잠 못이루는 이런 날이면 또박이는 연필 끝으로 그 곳을 적고 싶다.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날이면

깜빡 빠져든 꿈속에서 힘겨웁게 물에 잠겨 떠내려가는

내 어릴적 빨간 책가방을 본다.

잡힐듯 둥실거리는 빨간 색에 손을 내밀면 휘휘 허공에서 울음으로 돌아 오고

맥 빠진 그 하루는 창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잠들지 않은 이는 나와 그리고 비...그리고

돌아서버린 그 약속에 상처로 남았을  그 누군가에게 건네지 못한

미안하다란 말과

무심코 흘려버린 안타까운 꿈들이 깨어 있다.

이런 날이면

두꺼운 책 안에 숨겨둔 그것들에게

잊지 않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속절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