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날씨 때문에 바깥 놀이와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날.
나의 바깥놀이는 잡초가 자라는 나무 밑 화단을 내려다보는 놀이다.
지난주에 염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일산지역에 일제히 잡초 뽑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버스를 타러 가면서 알 수 있었다.
가로수 나무 가장자리에 노란씀바귀 꽃이 뽑혀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드디어 올 것이 오고 있구나...
학창시절 예방 접종한다고 간호사 언니의 하얀옷과 모자가 뜨면 가슴이 더 뜨끔했던 기억처럼
나이드신 아줌마들이 넓은 챙 모자를 쓰고 몸빼바지를 입고 잡초를 사정없이
뜯어재끼는 걸 보니 가슴이 뜨끔거리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했다.
그래서 일 도와주는 아줌마한테 곧 내 소중한 잡초를 사정없이 뜯으러 올 것 같으니
잘 지켜 주세요 했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가 급하게
봄부터 여름이 올 때까지 같이 나와 같이 살았던 무성했던 잡초들이
민둥산이 아니 민둥화단이 되어버렸다.
섭섭함을 도닥이며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비어버린 화단에 물을 뻔질나게 주었더니
뿌리가 살았던 잡초들이 별일없나하고 빠꼼히 밖을 내다 보고 있는중이다.
비가오면 조 이쁜것들이 잘 자라주겠지 하면서 나는 창안에서 밖을 내다 보고 있는중이고...
매장앞은 차들이 제법 왕왕 다니는 사거리다.
그래서 그런지 매장앞은 항상 쓰레기들이 헤쳐 모여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쓸고나면 금방 아이스크림 봉지가 날아다니고 전단지가 와서 철썩 달라붙고
담배꽁초가 허옇게 나자빠져 있고...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쓰레기들이 비맞기 싫어 모여들지 않는 날이라
내겐 매장앞을 쓸지 않아도 되는 그런 여유가 쥐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잠시 마음을 놓아두고 책을 읽으며 책에게로의 여행을 떠났다.
"벼랑 끝에 나를 세우다"를 요즘 읽는다.
토큰 세 개로 시작해 화진 화장품 부회장이 된 자전적 에세이.
나의 삶과 전혀 대조적인 이야기이다.
극성 맞은거하고 거리가 먼 나의 생활과 전혀 틀린 이야기라서 거부반응이 왔지만
사실 나 같은 사람이 성공한 그 분의 발자취라도 따라 가려면
되새김해서 꼭 읽어야할 그런 삶의 나침판인 책이었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마음을 데리고 올 수 없듯,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없듯.
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내 주머니는 항상 비어있다는 걸 알듯...
비가 오는 관계로 책을 펼치고 새로운 도전으로 나의 몸을 흔들어 보고
나의 정신을 반듯하게 놓은 하루였다.
억수로 쏟아져 아무 곳으로나 스며드는 빗줄기를 보며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채웠다.
연봉 12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헤아려보며,
그래봤자 나와는 상관없는 숫자에 볼과하지만...
빨간색 벤츠를 타고 다닌다고 했는데...다시 읽어봐야겠다.빨간색 뭔 찬지는 까먹었다.
그래봤자 나는 운전면허증도 없는 못 올라갈 나무에 불과하지만...
나뭇잎이 무성한 오솔길을 산책하듯
대숲이 우거진 암자에 앉아 앞에 놓인 산을 바라보듯
천천히 오전을 맞고 오후에 커피 한잔 진하게 찰찰 넘치도록 많이 타서 30분동안 나눠 마시며
비가 떨어지는 모양을 창안에서 관찰하며 책을 읽는 동안 다시 밤이 왔다.
비가오는 화요일은 손님이 드물다.월요일과 토요일이 제일 손님이 많고
수요일이나 금요일날 손님이 어느정도 드나들고 화요일이 제일 한가하다.
특히 오늘같이 비오는 화요일은 심심할 정도다.
빗소리를 들으며 그 속에 들어가 한바탕 당당하게 뒤섞여서 하루를 살아냈다.
오늘은 다리를 왼쪽으로 꼬았다 조금 저린듯하면 오른쪽으로 꼬았다를 번갈아하며 책을 보았고,
가끔씩 팔짱을 끼고 잘 보이지도 않는 빗줄기를 한참씩 올려다 보았다 내려다 보았다를 번갈아 했다.
그리고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여유를 허락해 주고,
어디로 날아갔는지조차 모르는 바람같은 흐름속에 나를 놓아 주기도 했다.
나는 "왜?" "알고 넘어가기"보다는 "그래?" "편하게 넘기기"로 살아가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 육중한 빗줄기의 느낌을 그냥 흐름으로 몸과 마음을 맡겨버렸다.
9시에 닫힌 문을 확인하고 가스불을 점검하고서야 퇴근할 준비를 했다.
깨끗한 느낌의 바깥공기는 "순수"란 제목이 어울렸다.
나는 억수로 장사를 잘하는 장사꾼도 아니고,붙임성 끝내주는 호탕한 아줌마도 아니다.
욕심을 부려도 되는 것도 복잡한 걸 싫어해서 포기하고 마는 나약하고 게으른 여자일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이들 간식을 담은 비닐봉지를 덜래덜래 흔들며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마음을 빗줄기에 놓아 두었던 하루였다.